김진기 교수의 티베트 기행 ⑨

   
 
  ▲ 해발 4천718m에 있는 남쵸호수. 호수 주변으로는 녠첸 탕글라산 연봉들이 에워싸고 있다.  
 

이곳을 기웃거리고 저곳을 집적거리기를 한시간 남짓, 갈 길이 간단치 않아 초원을 빠져나와 다시 비포장 산길로 접어든다.

고갯길을 막 올라서니 길가에 소형버스 한대가 있고 한 떼의 서양인들이 멀리 보이는 쪽빛 남쵸호수를 보며 탄성을 지르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빤히 내려다보이는데도 한참만에 도착하니 초원끝으로 설산이 이어지고 그 앞으론 소, 말, 양떼들이 점점으로 눈에 밟힌다.

해발 4천718m의 남쵸는 중국에서 청혜성의 청해호 다음으로 큰 염호로 라사 서북쪽 약 200㎞에 위치한다. 호숫가를 따라 남동쪽으로는 녠첸 탕글라산맥의 고만고만한 설봉들이 병풍처럼 호숫가에 펼쳐져 있다.

숙박할 타쉬도르 사원근처 텐트호텔(?)에 도착, 마침 침대가 다섯개인 텐트 한동을 빌린다. 저녁시간은 호수에 면해있는 탕글라 연봉들을 해동갑 촬영을 한다.

라면과 햇반으로 저녁을 하고 사위가 너무 조용한 탓인지 오히려 쉽게 잠이 들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살을 아리게 한다. 하늘의 별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돼 쏟아질 것만 같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호숫가 언덕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바투 앉아 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초원에 스며드는 호수의 묽은 소리와 섞어 하룻밤을 지새는 그림을 그리며 추위를 달래본다.

6일 새벽에 커피를 마시고 일출 촬영을 위해 있는 옷을 다 껴입고 호숫가로 간다. 두시간 여를 버텨보지만 구름은 끝내 비켜서질 않는다. 호텔 사무실로 쓰는 어둑컴컴한 천막에서 야크버터차 한잔씩을 얻어 마시며 추위를 녹인다.

호수어귀 초원에 아침 햇살을 받은 에델바이스의 솜털이 더욱 은은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아침 일찍 나와 초원에 노니는 양떼들을 촬영하며 여한없이 달려와 오후에 라사에 도착한 일행은 쉬지 않고 다시 조캉사원으로 간다. 그만큼 알게 모르게 일행을 끌어들이는 것 같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흔히 머무는 곳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하늘과 산이요, 중국은 황하라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렇다면 티베트인들이 흔히 머무는 곳은 아마 이곳 조캉사원과 고원일거라고 짐작해 본다.

재래시장을 거쳐 한때는 세계에서 제일 큰 사원이었다는 드레풍사원엘 간다.

키 작은말 타고 키 큰 서양애들을 놀래킨 칭키스칸 군대가 이곳까지 괴롭혀 환란을 겪었지만 상대적으로 덜 파괴돼 비교적 옛 사원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온 사원이라고 한다. 승려가 별로 보이지 않는 조용한 사원이다. 태양열로 찬물을 끓이는 승려와 법당을 지키는 승려만 보일 뿐 빈 사원같은 정적이 흐른다.

다시 시내로 나와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인 ‘보석궁’이란 뜻의 노불링카로 간다. 단아한 정원과 호수의 정자도 잘 정돈돼 있어 인상적이다. 1959년 14대 달라이라마가 이궁전에서 군인으로 변장을 하고 탈출, 인도의 다람살라로 갔다고 한다.

내부엔 크지 않은 달라이 라마의 집무실과 침전이 그래도 보존되고 있어 사진촬영을 못 할 뿐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7일은 라사를 출발, 암드록쵸 호수를 따라 시가체까지 가기로 한다.

라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아쉬운 출발을 한다. 티베트를 가로지르는 얄루창포강을 건너 암드록쵸 가는 길 또한 험하기가 만만찮다. 하늘이 넓어지며 4천794m의 캄바라 고개를 넘어서니 우측으로 비취색의 암드록쵸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호수 건너 멀리 히말라야 연봉들이 다가설 듯 가깝다.

경사가 깊어 내리꽂듯 평지로 내려서니 호숫가 초지엔 방목하는 양떼 등 가축들과 마을 사람들의 들일하는 모습이 한 떼 어울리는 평화로운 광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도를 보면 흡사 전갈 모양을 한 호숫가를 따라 길은 계속된다. 어느 마을 앞에 당도하니 도로 보수 공사가 있다고 차를 세운다. 얼마나 됐는지 우리일행 말고도 지프 몇 대와 화물 트럭 등이 앞에서 출발 차례를 기다린다.

세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 정비가 끝났는지 출발 신호를 받고 떠난다. 서부 개발이라고 하더니 도로 사정만 봐서는 서부개판이다. 폐차직전의 지프차를 내준 사정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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