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화봉산성은 부강면 등곡1리의 해발 252m 화봉 정상에 있는 토석 혼축 겹성이다. 등산객들도 화봉산성은 가지 않는 것 같다. 애기바위부터 길은 뚜렷해도 풀과 덩굴식물이 우거져 딴죽을 걸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왔어도 차에 늘 싣고 다니던 등산화로 갈아 신고, 등산지팡이를 가져오기를 참 잘했다. 다만 노고산성, 애기바위성, 화봉산성의 줄기를 적어도 5~6시간 산행을 계획했으면서 물 한 병도 준비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였다.

화봉산성 가는 길은 그냥 능선이 아니다. 애기바위성에서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한 15분 이상 기다시피해서 내려가야 했다. 길을 점령한 아카시 잔가지와 산딸기 덩굴이 스치면 종아리와 팔이 따갑고 쓰라렸다. 한참을 내려가니 수렛길이 나왔다. 부강면 등곡2리에서 등곡1리나 노호리로 가는 옛길 같아 보였다. 수렛길 절개지 바로 위에 '화봉산성'이란 푯말이 나뭇가지 속에 숨어 있었다.

산봉우리는 아직 멀었는데 갑자기 푯말이 나오고 성터는 보이지도 않고 길도 희미해서 다 포기하고 등곡 2리로 그냥 내려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기도 해서 스마트 폰을 열어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푯말에서 8분이란다. 땀으로 목욕을 했는데 갈증을 견딜 수 없다. 생각해 보니 점심은 초코파이 하나랑 쿠키 한 조각으로 때웠다. 여기서 돌아설 수 없으니 억지로 힘을 냈다.

가풀막진 흙길을 7~8분 올라갔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성의 흔적이 보였다. 성벽의 흔적을 파헤쳐 보기 전에는 토성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석축 산성이다. 화봉산성은 등곡1리와 노호리의 경계인 북동쪽 화봉 정상부를 중심으로 서쪽과 서남 두 능선, 계곡을 약간 삼태기 모양으로 감싸 안은 형태로 쌓았다. 그래서 포곡식 산성으로 이름을 붙이려 하니 정상부인 화봉을 빙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상부는 평평하고 나무도 없다. 가운데는 화구호처럼 움푹하다. 낮은 웅덩이 같은 곳에 잡초가 우거졌다. 지팡이로 더듬으며 걸었다. 마치 신천지를 개척하는 기분이다. 성벽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고 남쪽 일부 성벽에서 석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 전체는 대부분이 토성이다. 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니 분명 일부는 겹성으로 보였다. 등곡2리 쪽 동쪽으로는 계단식 다랑이 논처럼 만들어진 겹성이다. 그 만큼 이 성은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정상에는 삼각점만 있고 안내판도 정상석도 없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서 가만히 서서 마을 방향을 살펴보았다. 서쪽으로 부강에서 매포역 쪽으로 가는 도로가 있고 그 주변에 현도 쪽에서부터 노호리, 등곡1리, 등곡2리가 있다. 여기서 노고산성은 남쪽으로 있고 부강은 동쪽이다. 그렇게 보니 노호리 마을을 감싸 안은 포곡식 산성이 분명하다. 정상부는 마치 보루를 만들듯이 테메식으로 둘러싼 산성이다. 정상부의 테메식 산성과 능선의 포곡식 산성을 합하면 고리 모양의 성의 윤곽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거진 숲에서 새소리만 요란하다. 저쪽 덤불 속에서 멧돼지라도 한 마리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정상에 지팡이를 짚고 서서 노고산성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화봉산성의 역할을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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