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그때가 5살이었다. 필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기억되는 사건 ‘6·25’가! 집안 식구들은 마을 뒤편 골짜기로 피신하여 토굴생활을 하였다. 밤이 되면 집에 두고 온 돼지들에게 밥을 주려고 형을 따라니, 송아지만한 어미가 새끼를 출산했는데 더위를 먹어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래도 새끼들은 어미가 아는지 모르는지, 앙증맞게 이리저리 뛰놀던 모습이 어제 같다. 먹이를 먹지 못하여 어미가 죽자 새끼들도 모두 죽었다고 한다. 미물들에게도 전쟁은 이렇게 참혹한 것이다. 

금년은 중국이 건립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 TV화면에는 “장려(壯麗) 70년! 분투(奮鬪) 신시대-거룩하고 아름다운 70년! 분발하여 투쟁하자 신시대”라는 문구가 계속해서 뜨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이 점점 가열되니 ‘6·25’를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에서 치러진 청천강 전투! 패배한 유엔군의 몰골이 너무나 처참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중국 TV를 보면서 필자는 왜곡된 역사관이 얼마나 무서운가?!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가증스럽고 무서운 나라인가! 필자는 치미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중국의 왜곡된 역사관을 지적하며, 이에 현혹되어선 안되겠다는 뜻으로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중국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항미원조’- 미국이 조선을 침략하여 중국이 구원한 전쟁- 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려면 인과(因果)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만약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6·25’전쟁을 존재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범함으로써 비롯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은 9월 15일 맥아더장군에 의한 인천상륙작전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것으로 기술한다. 이때부터 미국이 38선 넘어 북조선으로 침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인이 되는 ‘6·25’는 아예 빼버리고, 인천상륙이라는 ‘결과’를 ‘원인’으로 둔갑시킨 전도된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 항미(抗美: 미국과의 전쟁)라는 용어가 틀렸다. ‘6·25’는 미군만 참전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참전한 유엔군이 중공군과 싸운 전쟁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6월 26일 오전 4시 “북한군은 즉각적인 전투행위 중지하고,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하라”고를 결의했다. 그래도 북한은 계속 남쪽으로 진군함으로써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정의의 유엔군을 결성되어 16개국이 참전한 전쟁이다.

셋째, 6·25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자랑스러운 전쟁이다. 인류역사상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국가가 한 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오늘의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6·25’는 아직도 살아있는 생생한 역사이다. ‘항미원조’란 왜곡된 역사관이다. ‘6·25’는 ‘6·25’이지, 결코 ‘항미원조’가 될 수가 없다. ‘6·25’는 자유민주주를 수호한 전쟁이자,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 전쟁”이라고 필자는 주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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