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우물우물 주물떡거리며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단안이 섰다. 장마당을 개설하는 문제, 상전을 짓는 문제, 나루터를 개선하는 문제, 마늘을 도거리하는 문제까지 모두 돈이 앞장서야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최풍원은 목재는 서태술에게 외상으로, 상전 짓는 일꾼들은 객주들에게 맡겨 마을사람들을 동원하고, 나루터를 넓히는 공사는 동몽회원들에게 맡겨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다. 누구에게 맡기든 그 일은 인력이 필요하고 사람이 일을 하려면 누구든 먹어야 했다. 먹지 않고 일을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최풍원은 북진여각이 힘들다는 이유로, 그동안 고을민들에게 베풀었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은연 중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급한 마음에 최풍원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아무리 남의 덕을 받았다 해도 은혜를 갚는 것은 내 형편이 어지간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당장 내 배가 고프고 식구들이 배를 곯고 있는데 남의 집 일을 도와주러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다느니 하는 그런 고사는 배부르고 등 따신 부자들이나 양반들이 자기들은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백성들을 짜낼 대로 짜내기 위한 구실거리에 불과했다. 물론 내가 아무리 곤경에 처해 있어도 남을 위해 도와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였다. 지금 최풍원이 벌이고 있는 일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족히 서너 달은 걸려야 마무리 될 일이었다. 그 시간동안 마냥 일만 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내 일이라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일이라는 것은 제대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성사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래 갈 수 있었다. 먹는 일이고, 돈이 걸려있는 이해관계라면 깔끔하게 처리하고 넘어가야 탈이 없는 법이었다. 남의 물건을 사고,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시키면서 그냥저냥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더구나 이제껏 최풍원이 벌였던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었다. 북진여각의 존폐가 달린 문제였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렇게 계속 해나갈 수는 없었다.

최풍원은 충주 윤왕구 객주에게 달려가 급전을 마련해서 곧바로 여주 이포나루로 내려갔다. 지난날 한양 공납 때 알게 된 이포 양곡 창고의 쌀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빌린 돈으로 하미를 사들였다. 풀죽을 끓여먹어도 보리보다는 쌀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보리 값에서 조금만 더 쳐주면 하미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이포나루 곡물상들 창고였다. ‘재수 좋은 년은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진다’더니, 일이 되려고 하니 이포나루에서 경강선주인 마덕필을 만났다. 마덕필은 삼개나루에서 한양 물산을 싣고 올라와 이포나루에 하역을 마친 상태였다.

“선주님, 그동안 무고하셨는지요?”

최풍원이 마덕필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여쭈었다.

“최 대주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마덕필 역시 반색을 하며 최풍원을 맞았다.

“선주님, 우리 짐 좀 실어다주시오!”

최풍원이 다짜고짜 마덕필에게 매달렸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있지도 않은 손자에게 술심부름 시킬 사람이네! 남 사정을 먼저 알아보고 자초지종을 얘기해야 들어주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무조건 북진까지 실어다 줘야합니다!”

마덕필이 최풍원의 우격다짐에 밀렸다.

“허허! 그 사람 참, 무슨 짐이 얼마나 되는지 들어나 보세!”

“하미 삼백 석입니다요!”

“중선이면 되겠구먼. 마침 내가 끌고 온 배가 중선이라 그건 됐지만……, 이보게 물 사정은 괜찮겠는가?”

마덕필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옆에 있던 뱃꾼에게 물었다.

“대선은 힘들겠지만 아직 중선은 단양까지도 너끈합니다요!”

뱃꾼이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실은 삼개로 내려가자마자 바로 소금을 실러 강화도로 가야 한다네!”

“선주어른, 소금이야 썩는 물건이 아니니 좀 미뤄둔다고 어찌 되겠습니까요? 그러니 우리 쌀 좀 먼저 실어다 줘야합니다!”

최풍원이 막무가내로 우겼다.

“썩고 안 썩고 문제가 아니라 장사꾼은 약조가 중한 것 아닌가?”

“저라고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요. 하지만 제 사정이 하도 다급해 그럽니다! 선주님은 삼개에 또 다른 배도 있잖습니까? 그 배로 소금을 실어오라 하고 제 짐을 실어다 주시오. 저는 선주님 밖에 기댈 데가 없습니다요!”

최풍원이 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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