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참으로 일이라는 것은 이상했다. 일은 사람의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일이 없어 하릴없이 빈둥거리게 만들다가도 일이 몰릴 때는 사람이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한꺼번에 몰렸다. 조산촌 차익수 객주가 말하는 스무날 뒤쯤이면 상전공사가 한창일 것이고, 나루터 공사에 장마당을 열 준비까지 중첩될 것이 뻔했다. 거기에 도거리한 마늘까지 한양으로 옮겨야하는 일이 또 생긴다면 시간을 쪼개고 몸을 쪼개도 감당해내기가 벅찼다. 그렇다고 어느 한 가지 소홀히 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최풍원의 처지였다. 외려 차익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둘러야할 일이 더 생겼다.

“형님, 조산촌에서는 얼마나 거둬들일 수 있지요?”

“현곡, 상·하리, 각기, 소야, 대가리, 상·하원곡, 하진까지 다해봐야 이백 호 남짓이니 거기서 마늘농사를 짓지 않는 집, 짓어두 팔게 없는 집 빼면 반절은 될까. 그러면 백호 잡고 거기서 지질한 놈 파치 빼고 나면 팔 만 한 놈은 얼마나 될까 모르겄네. 집집마다 스무 접이나 서른 접은 나올라나.”

차익수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따져 봐도 어림짐작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확을 해서 눈앞에 쌓아놓은 현물이라면 몰라도 아직도 태반은 땅속에 들어있는 작물을 계산한다는 것은 가축 뱃속에 든 새끼 수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백 호에 스무 접이나 서른 접이라면 넉넉하게 쳐도 삼천 접인데, 최소 그 서너 배는 더 도거리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쪽에서 형님이 더 할 데 없습니까?”

“왜 없겠는가, 있기야 있지! 그렇지만 땅심 좋고 땅이 넓어 소출 많은 마을은 이미 오래전부터 단양 큰 상인들이 꽉 잡고 있어 나도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네. 조산촌 인근에서 그나마 이 정도 모은 것도 그동안 임방을 하며 음으로 양으로 풀어먹인 것이 있어 그 덕분일세!”

“그걸 왜 모르겠소. 나도 답답하니 형님에게 해본 소리요!”

최풍원도 차익수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 그만큼 마늘을 도거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평생 장사를 해서 입심 좋고 수완 좋은 박한달을 조산촌으로 보낸 것도 차익수를 돕기 위해서였다.

장사라는 것 또한 묘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오랫동안 낯익은 사람을 찾기 마련이었다. 물건이 아주 출중하고 싸다면 혹시 몰라도 어지간하면 물건을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단골을 찾기 마련이었다. 최풍원도 오랫동안 행상을 하며 그런 단골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그 마을을 드나드는 소금장수가 최풍원 뿐만이 아닐 텐데도 언제나 기다렸다가 자신의 물건을 팔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그것이 고마워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듬뿍 소금을 퍼주었다. 때로는 그 마을에 볼일이 없는 데도 단골이 궁금해서 일부러 발품을 팔아 들르는 경우도 많았다. 장사로서는 손해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장사가 그런 것이다 보니 한 번 남의 단골이 된 사람을 내 쪽으로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맞춰야 하는 거여?”

“딱히 정해놓은 양은 없지만, 한양으로 가져가려면 최소한 일만 접은 확보해놔야 선적거리가 될 것 아니우?”

“삼천 접을 열 개 마을에서 거뒀으니, 일만 접만 한다고 해도 최소 사오십 개 마을은 도톼야 그 물량을 만들겠구먼. 여각에서 벌여놓은 일도 많은데 보통 일이 아니구먼! 농산물이라는 게 제 때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니 미뤄두었다가 나중에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최풍원이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그 속을 번연히 알고 있는 차익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형님 걱정 마시오! 조산촌 돌아가거든 도거리해놓은 마늘을 갈무리해서 하진 우 객주 임방으로 옮겨놓고 언제든 기별이 가면 선적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시오. 그리고 박 객주님을 여각으로 빨리 오라 해주시오!”

“알겠네! 그런데…….”

최풍원이 마무리를 하려고하는 데 차익수가 미적거리며 뜸을 들였다.

“형님 왜 그러시우?”

최풍원이 낌새를 차리고 물었다.

“다른 이야기에 빠져 내가 대행수를 찾아온 소간을 말 못했네.”

“그러고 보니 나도 내 걱정에만 빠져 형님이 여기까지 온 연유를 묻지도 못했네요. 그래 무슨 일이시우?”

그제야 최풍원도 차익수가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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