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자라…’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 슬픈 노랫말, 빛바랜 인민군복과 어릴 적 아버지가 그야말로 피토하듯 들려주던 ‘전우야 잘자라’의 노랫말이다.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인생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그 전우는 과연 편히 자고 있을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 바로 다음 세대인 우리들이야 반공교육이라는 미명아래 한국동란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에서도 배워서 그나마 민족의 비극을 이해는 하겠지만 다음 다음 세대들이야 어찌 그 비극을 이해하랴.

6월이라는 처참했던 달을 잊지 않고 슬퍼하고 전쟁이 불러온 수많은 희생과 엄청난 고통이 헛되지 잊혀지지 않게 하는 책 이억배의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을 소개한다. 한·중·일 작가들과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기획한 평화 그림책중 하나다.

전쟁이 남긴 보이지 않는 아픔들이야 기억하려 노력해야겠지만 가까이 있는 전쟁의 증거물 38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비무장 지대를 배경으로 전쟁세대인 할아버지와 전쟁후 세대인 손주가 그곳을 찾아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망향가다. 분단이 얼마나 오랜 세월 할아버지의 울부짖음에 무정한 답을 했으며 그 원한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왜 그렇게 힘겨운지 메아리는 답이 없다.

서쪽 임진강 하구에서 동쪽 고성군 명호리 바닷가 248km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2km식 물러나 세워진 철책과 철책사이의 공간이 지리적 비무장지대 이다.

책의 표지에서부터 작가는 새를 통해 그리움과 자유 평화를 이야기 한다. 우리들이 쉽게 갈 수 없는 우리의 땅을 세밀하게 역사그림처럼 그렸다. 살벌한 철책선과 대비되는 비무장 지대의 아름다운 사계절 모습, 자연은 저리도 당연히 스스로 행복한데 무엇이 할아버지의 앞을 방해하는지 묻는다. 그 아름다운 곳은 당연 우리 민초들의 영역이다. 그래서 편안함과 평화가 있다.

노구를 이끌고 몇 번이고 올랐을 할아버지의 고단함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그림 곳곳에 담겨있다. 그 그림에는 할아버지의 기억 속 고향이 담겨있다. 차라리 자유로운 한 마리 새였으면 바라는 염원을 그렸다. ‘금방 돌아가겠지’가 70년을 지났는데도 할아버지는 힘없이 돌아서야 한다. 사라지는 기억들과 함께 막연하기만한 통일의 문을 작가는 상징적으로 연다. 이 한 권의 책은 작중 할아버지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금도 고통을 겪을 이들께 건네는 작가의 탄식이고 공감이며 위로일 수 있을 듯하다.

유월, 금방 돌아갈 수 있을 줄 알고 세월에 속아가며 살아온 그칠 수 없는 피울움같은 고통과 그리움의 세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개인의 선택이나 잘못없이도 공동체의 역사 때문에 겪는 고통은 할아버지 세대가 죽기전에 해소될 것인가.

세계사에 유래없다는 동족이 서로 그럴만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증오로 목숨을 겨룬 비극과 통한의 세월은 그렇다 쳐도 개인의 고통은 어쩔까. 어째야 쓸까.

이억배의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에서 작가는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할아버지가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할아버지를 보내드린다. 단지 며칠 간의 방문도 어려운 현실에서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로 역사현실에도 봄은 와야 하겠다. 지금 생활 현실은 유월도 지나 칠월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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