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오래전부터 시집 전문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다.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작은 공간이 있다면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다. 읽히지도 않는 시를 팔겠다니 망하기 딱 좋은 아이템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굳이 시집을 팔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모 시인은 모든 예술에서 기본은 문학이고 그 중 으뜸은 시라고 말했다. 그러니 한 사람에게라도 시를 선물하는 일은 아름답지 않겠는가.

시는 접근하기 쉬운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시를 배우고자 하는 이도 많고 쓰는 이도 많다. 그러나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누구나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다. 그것은 언어를 다루는 기술의 문제일 수도 있고 타고난 시적 감수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시를 대하는 시인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여간 이 땅에 시인은 많고 시 또한 넘쳐난다.

누군가에게 좋은 시가 누군가에게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도 있는 법. 그러니 시집 한 권을 소개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오랜 고민 끝에 시집을 몇 권 선정하고 카페 한쪽 공간 벽면에 책꽂이도 설치하고 간판도 걸었다.

‘시인이 꿈꾸던 책방’ 실천이 생각에 미치지 못했던 나의 꿈이 여러 지인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우연한 대화가 아니었다면 꿈꾸던 책방과의 인연은 없었을 것이다.

서점을 열어놓고 보니 관심을 보이는 손님 몇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썰렁하다. 애당초 시집을 팔 요량은 없었으나 액자처럼 걸려 있는 시집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다. 뭐라도 노력해보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괜히 모셔다 벽지가 되어가는 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양이가 찾아온 건 시집이 진열되고 며칠 후부터였다. 사람을 경계하느라 간혹 멀리서 모습을 보이던 고양이였다. 불쑥 카페에 나타나 야옹 야옹 대화를 시도한다. 그날부터 배고픈 고양이에게 먹을 것도 주고 약을 사다 진드기 치료도 해주었다. 비실비실하던 고양이의 건강도 좋아졌다. 내 생에 고양이와의 인연은 생각지도 않았다. 가엾은 생명에게 신경이 쓰이는 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현재 카페를 찾아오는 고양이는 세 마리다. 지인들이 붙여준 첫 고양이 덕자를 비롯해서 점박이 고양이와 얼룩 고양이, 모두 길고양이다. 무슨 사연으로 버려졌는지 아니면 길고양이로 태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길고양이는 없는 법이니 사람이 나쁜 것 아니겠는가.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지인의 말을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덕자 보다 경계심이 많던 점박이와 얼룩이도 때가 되면 찾아와 야옹 야옹 시 한 수 읊듯 나직하게 인사를 건넨다. 경계를 모두 푼 것이 아니라서 선뜻 다가오지는 않지만, 오래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앞선다. 살갑게 몸을 비비기도 하고 한참을 앉아 있다 가기도 하더니 요즘에는 밥만 먹고 쌩하니 가버린다.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시집이 안 팔리는 것보다 더 서운하니 이 노릇을 어쩌란 말인가.

누구는 고양이가 집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고양이를 기를 생각은 없다. 한 생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오늘도 자동차 밑을 배회하거나 어느 빈집 은신처에 몸을 뉠 것인데, 가끔 들러 시 한 편 나누는 사이도 좋지 않겠는가. 우연이 인연을 만드는 삶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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