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럼 한 번 베껴 볼깝쇼?”

훌치기꾼이 가랑이를 벌려 통나무 위에 올라타듯 서더니 훑이를 양손에 다잡고는 껍데기를 훌터나갔다. 그러자 열 자는 족히 될 나무껍질이 국수반죽처럼 얇고 길게 쭉쭉 벗겨졌다. 훌치기꾼은 통나무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순식간에 알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사람 증말 벳끼는 것은 이골이 났구만!”

곁에서 구경하던 목수가 감탄을 했다.

“안 벗으려고 틀어쥔 년이 힘들지, 가만히 드러누운 년 벗기는 게 뭐가 힘들겠소이까. 이런 거라면 하루 백 그루는 벗기겠소이다.”

사람들이 모두들 칭찬을 하자 훌치기꾼은 벌거벗은 통나무를 타고앉아 쓰다듬으며 큰소리를 펑펑 해댔다.

힘들고 거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입부터 거칠었다. 목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힘에 겨워 견뎌내기 힘들 때 상소리라도 하다보면 넘겨버리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게 일상사가 되다보니 입에 붙어 다니는 것이 잡소리요 음담패설이었다. 양반들은 그걸 보고 ‘근본 없는 천한 것들’이라며 욕을 하고 업신여겼지만 매일처럼 힘든 일을 하는 목수들은 그렇게라도 풀어야 힘든 노동을 견뎌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자귀꾼과 까뀌꾼들 나오시오!”

나무껍질을 벗기는 훑이꾼들이 앞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판길이가 나무를 깎고 다듬는 자귀꾼과 까뀌꾼을 불러 모았다. 자귀꾼과 까뀌꾼이 정해지자 그 다음에는 나무표면을 곱게 미는 대패쟁이, 대패쟁이가 정해지면 나무를 자르고 켜는 톱질꾼, 톱질꾼 다음에는 먹줄 튕기는 먹쟁이, 나무에 구멍을 파는 끌쟁이들이 차례로 정해졌다. 본래 목수라면 어지간한 나무 다루는 일은 혼자 다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리 할 수 없었다. 그냥 한집 식구가 사는 옹색한 토담집이라면 그리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해야 하는 일은 뼈를 세워 상전을 짓는 일이었다. 뼈 집은 토담집과는 달랐다. 토담집이라면 흙벽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으면 끝나는 일이지만 뼈 집은 많은 목재가 복잡하게 들어가는 집이었다. 그것도 십여 채를 한꺼번에 세우는 일이었다. 그러니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해낼 수 없었다. 목수가 나무를 다루는 일이라면 모든 걸 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그만이 잘하는 일은 각기 가지고 있었다. 판길이는 여러 마을에서 모인 목수들의 특기를 살려 일을 맡김으로서 튼튼한 상전도 짓고 촉박한 시일도 맞춰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치목장에서는 판길이가 목수들의 재주를 가늠해 각기 할 일을 분담했다. 어찌 보면 집을 짓는 여러 과정 중에서 나무를 구하고 다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나무를 가지고 하는 일만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세우고 맞추고 얹고 막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상전은 살림을 해야 하는 일반 주거지와는 달라 물건을 쌓아두거나 진열하는 공간만 만들면 되는 까닭에 그리 세세하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아니었다. 목수들 할 일이 정해지자 북진장마당 상전 짓는 일이 갑자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도편수 판길이가 나루터 뗏목장과 나무를 다듬는 치목장을 분주하게 돌아치며 인부들을 독려했다. 치목만 마무리되면 곧바로 집짜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보게들, 가가를 짓더라도 목수는 자기 재주를 다부려야 하네. 한데 자네는 어째 기둥에 먹줄을 쌍으로 튕겼는가? 어떤 게 상줄이고 어떤 게 하줄인가? 그걸 분명히 해놔야 끌쟁이들이 제대로 구멍을 팔 것 아닌가. 그래야 또 맞추는 사람들이 잘 맞출 것 아닌가? 애초에 먹줄을 잘못 튕겨 구멍을 잘못 파면 집이 삐뚤하게 서는거여! 어떤 게 본마누라여?”

“약간 가느다란 선이 큰마누라요!”

판길이의 물음에 먹쟁이가 대답했다. 판길이가 먹칼에 먹을 묻혀 두 줄 중 약간 더 굵어 보이는 줄에 ×자를 쳤다.

“거기 대보와 중보에 꼭 맞게 사개통을 파야 집이 제대로 서는 거여! 대보하고 중보가 집에서 제일 중한 기둥이니 정신 바짝 차려 일들 하게!”

판길이가 치목장 곳곳을 돌아치며 목수들 하나하나의 손놀림과 다듬고 있는 목재들을 살피며 잔소리를 끓어 부었다. 판길이도 일하고 있는 목수들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면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치목하는 것이 애초에 잘 해놔야 뒤탈이 없는 법이지 만약 집을 세우다 잘못 된 것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시간과 품을 곱절로 써도 원상태로 온전하게 되돌릴 수 없었다. 속에서는 참자해도 평생 집 짓는 일을 해오며 그런 경우를 수없이 봐온 터라 입에서는 잔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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