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노고산성에서 내려와 애기바위 쪽으로 갔다. 애기바위에서 바로 약수터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애기바위와 거북바위가 있고 애기바위 전설을 알리는 알림판이 서 있다. 전설을 요약하면 하늘이 황소에게 장사 아기를 잉태시켜 노고산으로 보내 이곳에서 해산하는데 선녀가 내려와 산바라지를 하고 승천하였으며, 범이 나타나 이리떼로부터 아기를 보호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바위를 애기바위하고 한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아기장수 우투리’ 유형의 전설인데 아기장사가 태어나는 과정의 기이성만 있고 장사 아기가 장수로 성장한 다음에 이뤄지는 비범한 행적이 없다. 대개 아기장수는 기이하게 태어나서 그 비범한 능력을 보이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아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여기는 그런 내용이 없다. 대개 전설은 몇 개의 유형이 있고, 그 지역의 자연적 인위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변개돼 전해지게 되는데 애기 바위 전설은 장사 아기의 뒷날의 행적이 없다. 바위에 '애기바위'라는 이름이 붙게 된 유래만은 강조하였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가파른 길을 숨 가쁘게 올라가니 바로 애기바위성으로 불리는 보루 같은 바위성이 우뚝 앞을 막아선다. 앞에 봉화대라고 팻말을 세워놓았다. 한 10m 정도 높은 곳에 올라가 보았다. 한 2~3평정도 되는 평평한 곳에 잡초가 무성하다. 사방이 높은 보루 같은 모양이어서 누가 기어오를 수도 없고 그냥 내려 뛰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주변 산에 나무만 없으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쪽은 노고산이 막아서 보이지 않았다.

분명 북쪽으로 봉화를 올려 연락하는 봉화대로 생각된다. 이정표에 적은 것처럼 정말 고구려 산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동, 서, 북으로 부강면 지역이나 금강 유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보루 역할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군사들이 한 5~6명 정도 주둔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보루 역할을 하다가 유사시에는 봉화를 올려 위급한 사태를 상급부대에 알리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보루를 한 바퀴 돌면서 축성의 흔적을 발견하려고 나무와 풀을 헤치고 찾아보았다. 자연적인 커다란 바위를 토대로 해서 작은 성돌을 이어 쌓은 흔적이 보였다.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쌓았는데 성치산성이나 삼년산성에서 본 것과 같은 축성방법이다. 이 보루를 쌓을 때 정교하게 다듬은 돌 몇 개만 옮겨서 쌓은 것으로 봐서 그렇게 큰 힘은 들지 않았을 것 같았다. 성돌은 가로 50~60cm, 세로 30cm, 두께 25cm는 되는 것 같았다. 돌과 돌 사이에 무너지지 않게 쐐기돌을 박은 것으로 봐서 꽤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돌은 분명 어디서 옮겨오거나 이곳의 커다란 바위를 다듬어서 사용한 것 같았다. 축성에 사용된 돌이 이곳의 바위와 같은 재질인 것으로 보아 여기 돌을 다듬어 쓴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회색 토기조각이 나왔다고는 하나 땅을 파고 확인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잡초가 무성하다.

삼국시대에 축성한 것이라면 돌을 옮겨오는 일이나 다듬는 일에 상당 기간 민중을 동원했을 것이다. 이 정도의 보루를 만드는 토목공사를 산 정상 부분에서 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이렇게 유용한 보루를 설계한 것은 그 만큼 전쟁에 대한 경험 축적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높이나 넓이로 봐서 봉화를 올리거나 주변을 경계하는데 상당히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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