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방금 나는 최풍원 대행수로부터 상전 짓는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소! 대행수는 북진도중 내 모든 객주들의 최고 윗전이니 그의 말은 객주들도 따라야 하오. 따라서 여러 목수들은 지금부터 내 지시대로 따라야 할 것이오!”

판길이가 목수들을 모두 모아놓고 자신의 지시에 따를 것을 공표했다.

“최풍원 대행수께서 결정했다면 따로 할 말이 뭐가 있겠소이까?”

“대행수가 그리했다니 우리는 그리 따르겠소이다!”

치목장에 모여 있던 목수들 중 최풍원의 결정이라는 판길이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청풍 인근에 사는 고을민들 중에서 북진여각의 최풍원 대행수 은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을에 흉년이 들거나 관아나 청풍도가 인쥐들의 착취로 곤경에 처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마다 최풍원은 자신의 곳간을 열어 고을민들을 구제했다. 벼슬아치나 부자나 한결같이 제 뱃속 채우느라 고을민들이 굶어죽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을 때 북진여각에서는 곡물을 풀어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그것도 관아나 청풍도가처럼 곤경에 처한 급박한 고을민들의 처지를 이용해 되로 꿔주고 말로 받는 그런 고리의 조건이 아니라 무상이나 다름없이 곡물을 풀어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기아에서 건져냈다. 그걸 모를 청풍 인근 고을민들은 없었다. 그것은 지금 북진장터 상전을 짓기 위해 모인 목수들과 인부들도 모를 리 없었다. 최풍원의 결정이란 말에 어느 누구 한 사람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동안 북진여각을 운영하며 그가 어떻게 고을민들을 대해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고을민들이 북진여각과 최풍원과 객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오. 내 모든 재주를 다해 힘껏 해보겠소이다!”

“도편수 어른,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유?”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내 마을 니 마을 따질 것 없이 나무를 치목하는데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따라 줄을 서주시오!”

도편수 판길이가 목수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치목을 하는 방법은 대체로 목수 한 사람이 뒷모도를 데리고 통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것부터 시작하여 깎고 파고 뚫어 꿰어 맞출 때까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판길이는 일의 진척을 빨리하기 위해 과정을 잘게 나누는 파격적인 방법을 썼다. 먼저 제목을 다듬으려면 통나무의 껍질을 벗겨내야 했다. 이것을 훑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껍질을 벗기는 것으로 훌튼다고 하는데 이 과정은 특별한 기술보다는 완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다보니 목수라고는 해도 목수들 사이에서는 목수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그런 어중띠기 취급을 받는 존재였다.

“먼저 훌치기 작업을 할 사람부터 앞으로 나오시오!”

판길이는 가장 먼저 시작해야 될 훌치기 목수부터 지원자를 신청 받았다.

“여기 주모 껍데기고 통나무 껍데기고 껍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벗기는 거무가 하나 있슈!”

“누구요? 그런 거무가 있다면 빨리 앞으로 나오시오!”

“촛대마을 방구골에서 온 기술자인데 닭털을 뽑아도 얼마나 부드럽게 뽑는지 닭이 홰 한 번 치지 않고 계집 속곳을 내려도 어느새 벗겼는지 알지도 모를 정도로 손놀림이 번개랍디다!”

“지금 우리한테는 그런 기술 좋고 빠른 사람이 꼭 필요하오이다. 벗기는 기술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십장으로 삼을 테니 얼마나 잘 벗기는지 기술 좀 봅시다!”

“도편수께서는 이제 손주를 무릎에 않힐 연세에 남 옷 벗기는 것은 배워 뭣하려고 그러시오!”

빼조리 감처럼 얍삽하게 생긴 목수 놈 하나가 지긋한 판길이를 보고 농담을 했다.

“어제 그 집 뒤란 고목에도 꽃이 폈더이다. 그 나무에 비하면 난 안직도 청춘이오!”

“고목이라고 다 똑같은 고목이 아니라오. 우리집 고목은 양반들처럼 태생부터 힘 좋은 태생이고 도편수는 나기를 뒷산 잡목으로 났으니 우째 비교를 한단 말이오이까?”

“그럼 그대는 양반 거시기고 나는 상놈 거시기란 말이오? 거시기에 반상이 어디 있겠소. 내 걱정일랑 말고 보여주기나 하시오!”

판길이가 목수의 농을 받아 농으로 받아쳤다. 두 사람의 음담패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배꼽을 쥐며 와르르 웃어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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