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칼럼]빨치산과 노부부
[이정식 칼럼]빨치산과 노부부
  • 충청매일
  • 승인 2019.06.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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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청매일] 녹음이 검푸르게 우거진 6월이 오면 꿈에도 잊지 못할 처참한 전쟁의 비극에 가슴이 저린다. 지금부터 69년 전(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일어난 6·25 전쟁의 참화를 상기하면서 당시에 있었던 빨치산과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내가 15세의 어린 나이에 들은 이야기라 인과 관계를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른들로부터 들은 내용은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다.

노부부는 소백산 속에 사는 화전민(火田民)이었다. 전쟁이 일어났지만 오도 갈데없는 처지여서 산중의 외딴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외딴집에 빨치산 한 명이 추위로 온몸이 꽁꽁 얼고 기진맥진하여 맥없이 스며들었다. 그 청년은 굶주림에 지처 먹을 것을 달라고 총을 들고 노부부에게 애원을 했다. 산속에서 농사만 짓는 노부부는 공산당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더욱이 이처참한 6·25전쟁이 나던 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기에 항상 슬픔에 젖어 죽지못해 살아가는 외로운 처지였다. 이러한 노부부이기에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을 적으로 생각할 이가 없다. 그저 알 수 없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니 내 아들처럼 귀한 목숨이라 생각했다. 되살아난 빨치산은 죽어가는 내 목숨을 살려준 노부부에대한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고향에 부모님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마다 고민을 했다한다. 며칠이지나 빨치산 청년은 노부부 몰래 산을 내려가 총을 버리고 경찰에 자수를 했다. 경찰 신문에서 왜 자수를 했느냐는 물음에 ‘고구마를 삶아먹게 해주고 굶주림을 면해 살려준 노부부의 따듯한 사랑 때문이라’했다. 그러나 빨치산 짓을 한 것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고향에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말만 풀 하고 자유롭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았던 산속 노부부는 이념을 앞세워 산속에서 투쟁하던 젊은이를 그의 부모 곁으로 돌아가게 한 그 힘은 무엇 이였을까. 분단의 장벽을 넘는 길은 다름 아닌 인간 사랑이요. 자유와 인권 존중이다. 자유와 인간의 존엄한 가치의 소중함을 6·25전쟁 일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빨치산 활동은 6·25전쟁 전후(1948∼1955)휴전협정이 되기 전까지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남한을 집요하게 교란했다. 남한 공산화를 목적으로 하는 남로당에 가입하면 빈부 격차 없는 지상 천국이 올 것처럼 선동하고 여기에 속아서 가입한 청년들을 앞세워 경찰서 기습방화, 부락요인 암살 등 남침을 위한 후방 교란작전에 동원했다. 이들은 오대산, 태백산, 지리산을 주요무대로 활동해서 산사람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남로당에 가입한 가족들은 인공시절에는 영웅대접을 받았지만 북한군이 물러가면 남한 군과 경찰에 적색분자로 지목돼 많은 시달림을 받았다 .

우리 경찰과 국군은 빨치산, 즉 공비(共匪) 토벌 작전을 수없이 전개해 모두 소탕했다. 현재도 미래에도 북한은 적화야욕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세습독재체제 유지를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해 위협하는 북한정권은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따라서 지금현재 미·중·소·일 4강 패권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되는 길은 무엇인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하고, 북의 위장 평화공세는 단호히 차단해야 한다,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를 굳건히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단합된 힘만이 오늘의 위기 극복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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