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춘추시대, 안영(晏嬰)은 제(齊)나라 사람이다. 어느 날 왕의 명을 받들어 초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무렵 초나라 영왕(靈王)은 평소 제나라를 아주 얕보아 사신 일행에게 크게 망신을 주고자 하였다. 안영의 인사를 받고나자 영왕이 말했다.

“아니, 제나라에는 그렇게도 잘난 신하가 없단 말이냐? 어찌 이리도 못난 그대를 우리 초나라에 사신으로 보낸 것이냐?”

이는 제나라를 우습게 여긴 것도 있지만 인물 없고 키도 작은 안영을 비웃고자 함이었다. 이에 안영이 태연히 대답하였다.

“우리 제나라에서는 각국에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인물이 못나고 능력이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이 큰 사람을 보냅니다. 소신은 제나라 신하들 중에서 능력과 외모가 부족하여 이곳 초나라에 오게 된 것입니다."

안영의 이 재치 있는 대답을 들은 초나라 영왕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 순간 마침 초나라 형리들이 죄인을 하나 끌고 제나라 사신 일행의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초나라 영왕이 그들의 걸음을 멈추도록 하였다. 그리고 형리에게 물었다.

“그 죄인은 어디 사람이고 무슨 죄를 지었기에 끌고 가는 것이냐?”

이에 형리가 아주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이 죄인은 제나라 사람입니다. 초나라에 와서 일반 백성들처럼 바르게 일은 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도둑질을 일삼아 긴급 체포하여 끌고 가는 길입니다.”

영왕이 그 말을 듣고 또 다시 제나라를 무시하고자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모두 저렇게 도둑질을 잘 하는 모양이오?”

이에 안영이 차분히 대답하였다.

“소신이 알기로는 저희 회남(淮南)에서는 귤이 아주 잘 자랍니다. 수확 철이 되면 그 맛이 아주 달고 향기롭습니다. 그러나 그 귤이 초나라 지역인 회북(淮北)에만 가게 되면, 잎과 줄기는 모두 비슷하지만 그 맛은 쓰고 시어 모두가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제나라 백성들은 생활이 풍족하여 나서 죽을 때까지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이가 결코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나라 사람이 초나라에 살게 되면 저런 도둑질을 하는 백성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는 초나라의 환경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에 영왕은 더 이상 제나라를 무시할 수 없었다. 허탈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재능을 익히 들어 한 번 농담한 것이오. 괘념치 마시오.”

이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있는 이야기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란 남쪽에서 잘 자라는 귤을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로 변한다는 뜻이다. 사람도 기후와 풍토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젊어서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생도 하고 모험도 하는 것이 괜찮은 인생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맘 편한 곳에 머물러야 괜찮은 인생이다. 이사할 때면 항상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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