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네 놈이 배지 불러 하는 소리지. 세상에 배곯는 보다 견디기 힘든 게 있는 줄 아느냐? 개뿔도 모르는 것들이 툭하면 안 먹는다고 하지!”

“객주님, 아부지가 주태백이라 저도 주릴 만큼 주려봤고, 고생도 할 만큼 해봤다구요. 그렇지만 힘든 건 힘든 겁니다요!”

김상만이 핀잔을 주자 녀석은 듣기도 싫다는 듯 벌떡 일어나 나루터 쪽으로 부르르 내려가 버렸다.

“요즘 것들은 어른 말에 수구리 하는 법이 없어! 에이, 마뜩찮아서…….”

김상만은 동몽회 젊은 놈 하는 짓거리가 못마땅해 똥 먹은 상이 되었다.

치목장 안에는 통나무를 목도하는 동몽회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북적거렸다. 각 마을의 상전객주들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다. 상전 객주들은 북진장터에 자신들이 장사할 전을 짓기 위해 각 마을의 집 짓는 기술자와 뒷모도 할 일꾼들을 모두 북진으로 불러들였다. 북진에 여러 채의 집을 한꺼번에 짓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청풍 인근에서 조금이라도 집을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아 몽땅 북진으로 모여들었다. 덩달아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까지 몰려들자 북진은 그야말로 장마당처럼 북적북적했다.

상전이 들어설 장마당에는 터다지기를 하고 있었다. 상전이야 여느 살림살이 집처럼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 손이 덜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집이 오래 서있으려면 터다지기를 탄탄하게 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상전이 들어설 터마다 북진마을 사람들과 객주들이 데리고 온 사람들과 어우러져 달구질이 한창이었다.

“이봐, 그쪽이 낮으니 가래질 두어 번 더 하게!”

양택이고 음택이고 동네 집 짓는 일이라면 빠지지 않는 원달이가 달구질로 움푹 페인 곳을 채우라며 가래꾼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가래 한 삽이 천복만복 가래로다!”

“에-일성 가래야!”

“여보시오, 우리 일꾼! 줄에 힘줘 당겨나 주소!”

“에-일성 가래야!”

가래를 잡은 가래꾼이 앞소리를 하자 줄을 잡은 두 가래꾼이 뒷소리로 받아쳤다. 가래꾼들이 소리를 주고받으며 원달이가 가리킨 곳으로 정확하게 흙을 퍼 던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때를 맞춰 달구꾼들이 돌달구를 매단 기다란 줄을 사방에서 잡아 당겼다.

“지경하세! 지정하세! 북진장터 지정하세!”

원달이가 달구노래를 선창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가 무슨 자리냐, 북진상전 자리로세!”

“으럿차하! 지정이야!”

원달이가 선창을 하자 달구줄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후창을 했다.

“한번다져 천 냥이면, 열번다져 만냥일세!”

“으럿차하! 지정이야!”

“상전 터를 다졌으니 금은보화가 화수분일세!”

“으럿차하! 지정이야!”

“좋다 좋다 참이 좋다! 명당자리 여기로세!”

“으럿차하! 지정이야!”

원달이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명나서 선창을 하자 달구꾼들도 종처럼 생긴 돌달구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려치며 후창을 했다.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도 가래꾼과 달구꾼들의 흥겨운 가락에 빠져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떼창을 했다. 터다지는 달구질 소리에 장터가 들썩들썩했다. 북진마을 전체가 공사판이 아닌 잔치 분위기였다.

상전을 짓거나 집을 짓거나 땅다지기를 해서 터가 마련되고 통나무를 다듬어 집에 쓰일 재목을 다듬는 치목 작업이 끝나면 반농사는 지은 셈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집을 짓는 과정에서 터다지기만큼 중요한 공정이 없었다. 터다지기가 완고하지 않으면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집을 올려놓는다 해도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둥을 세우고 벽채와 지붕을 올려야 집을 짓는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거나 무언가에 가려져 볼 수 없는 부분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터다지기가 끝나고 그 위에 초석을 놓고 수평을 잡으면 기초공사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치목장에서도 목재 다듬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여러 마을에서 동원한 목수들이 두서없이 일을 하느라 어수선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이다보면 그 중 한 사람은 우두머리가 있는 법이었다. 앞장서서 치목장을 이끌 사람은 광의리에 사는 목수 판길이었다. 판길이는 한벽루를 고쳐지을 때도 한양에서 온 대목수와 함께 일을 하며 조금도 밀리지 않은 목수였다. 마을마다에서 모인 여럿 목수들 중에서도 판길이를 치목장 도편수로 삼자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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