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여성화가들의 타협적 자화상, 모델로 연기하는 나를 그리다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여성화가들의 타협적 자화상, 모델로 연기하는 나를 그리다
  • 충청매일
  • 승인 2019.06.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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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의문: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 (2)자화상을 그리는 나는 모델인가, 화가인가

르네상스기 요구되는 덕목·정체성 결합된 독특한 자화상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
‘위대한 화가’ 되기 위한 발판 마련…미술사에 이름 남겨
사진 왼쪽부터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베르나르디노 캄피와 함께 있는 자화상’, 1550. 라비니아 폰타나 ‘클라비코드 앞에 있는 자화상’, 1577. 라비니아 폰타나 ‘60세 기념 메달’, 1611.
사진 왼쪽부터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베르나르디노 캄피와 함께 있는 자화상’, 1550. 라비니아 폰타나 ‘클라비코드 앞에 있는 자화상’, 1577. 라비니아 폰타나 ‘60세 기념 메달’, 1611.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우리는 지난 편에서 18세기 영국 왕립아카데미의 누드 수업에서 여성 화가들이 배제되었던 사례를 통해,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 대신에 ‘여성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가’라는 질문이 더 정확하고 정당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18세기에 이미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었고 아카데미를 통해 더 높은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 했던 여성화가가 처했던 상황이 그러했을진대, 그 이전 시대는 들여다 볼 것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식적인 교육에서 배제되고 여성에게 직업적인 화가가 장려되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지만 몇몇 예외적인 경우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귀족 가문에서 예외적으로 딸들의 교육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전문인이 되도록 독려하는 경우, 그리고 애초부터 화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경우가 그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여성 화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ola, 1535~1625년)가 전자의 경우이고, 아버지 화가의 개인교습으로 당대에 대단한 유명세를 떨친 라비니아 폰타나(Lavinia Fontana, 1552~1614년)가 후자의 경우이다.

소포니스바 안귀솔라는 칠남매 중 여섯이 자매이고 막내가 아들인 귀족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안귀솔라의 아버지는 딸들에게 당시 남성들이 받고 있는 각종 인문학들과 그림과 음악 교육을 받게 했으며, 소포니스바를 비롯한 세 명의 딸이 화가가 됐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 초상화가로 유명했던 베르나르디노 캄피를 입주시켜 삼년간 딸들의 미술 수업을 부탁했으며,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딸의 존재를 알리고 모작할만한 스케치를 부탁하는 편지를 두 번이나 쓰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소포니스바의 재능을 알아보고 ‘울고 있는 소년의 드로잉’을 답장으로 보내 왔다. 또한 소포니스바 안귀솔라의 아버지는 가장 재능이 있던 큰 딸을 데리고 다른 지방의 여러 귀족들을 방문해 딸의 그림 실력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어떻게든 딸에게 기대를 걸고 화가로 성공시키고 싶어 했던 귀족 아버지를 가진 행운의 화가가 소포니스바였으며, 이는 정말이지 당시에는 드문 경우였다. 귀족 가문의 숙녀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소포니스바 안귀솔라는 스페인 궁정의 궁정화가가 되어 왕비의 곁에서 그림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왕가 인물들의 초상을 그리는 직업화가로 성장했고, 궁정을 나와서도 그녀를 인정했던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연금을 받으면서 비교적 안정된 화가 생활을 누렸다. 르네상스 후반기에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건 여성화가의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이 입지전적인 화가 소포니스바 안귀솔라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세월이 지나가면서 어떤 모습으로 나이가 들어가는지를 한 편의 영화처럼 훤히 알 수가 있는데, 그만큼 그녀는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렸던 여러 자화상들 가운데 가장 특이하고 미술사가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품이 ‘베르나르디노 캄피와 함께 있는 자화상’이다. 이것은 제자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스승을 그린, 글자 그대로 액자형 구성의 초상이다. 그림 속 안귀솔라는 귀족 여성답게 금빛 자수가 놓아진 화려한 의상으로 성장(盛裝)을 하고 스승이 그리는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고 있다. 그녀의 스승 캄피는 세필(細筆)로 의상의 세부를 완성하면서 화면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캄피가 고개를 돌린 방향에는 누가 있었을까? 당연히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포니스바 안귀솔라가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녀는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과의 이중 초상화를 선보임으로써, 미술계에서 자신이 홀로 떨어져 있는 섬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라 유명 화가의 계보를 있는 적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캄피와 같은 대단한 초상화가에게 초상을 의뢰할 수 있는 귀족가문의 품격 있는 여성이라는 점 또한 암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보통의 자화상과 맥락을 달리 하는 점은, 실제로 스승과 스승의 그림을 그리는 주체가 안귀솔라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는 자신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안귀솔라는 이 그림에서 자신에게 모델의 역할을 부여하였고, 이는 그리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교묘하게 숨겨진 일종의 타협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점의 자화상 ‘클라비코드 앞에 있는 자화상’에서도 안귀솔라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모습보다는 악기를 연주하는 교양 있는 숙녀로서의 모습을 채택했다. 어린 시절에 그렸던 가족들의 초상에 늘 함께 등장하는 노년의 여인이 안귀솔라의 곁을 지키고 있는데, 이 작품이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일할 때의 것임을 감안할 때 이 노인은 화가의 유모 혹은 하녀로 추정된다.

이 역시 자신이 귀족가문의 여성임을 강조하는 일종의 장치이다. 악기 앞에 앉은 안귀솔라는, 붓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기보다 스스로를 모델처럼 묘사하고 있다.

남성 화가들은 이러한 장치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남성의 자화상이 영웅적이고 실물보다 크고 신성하게 자신을 그려내는 것과는 달리, 안귀솔라의 자화상은 상류층 여성의 필수 교양인 악기 연주를 하면서 하녀의 보필을 받는 사랑스러운 여성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던 덕목과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결합하는 일종의 자구책으로, 다른 화가의 모델이 된 것 같은 자화상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자화상의 양식은 소포니스바 안귀솔라가 창안한 것으로, 미술계에서 그녀의 후배격인 라비니아 폰타나의 자화상에서도 동일한 구도가 반복된다. 라비니아 폰타나는 볼로냐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던 역사화가 프로스페로 폰타나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개인 교습을 받아 화가가 됐다. 화가로 성장하고 싶은 여성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을 것이다. 라비니아 폰타나는 안귀솔라보다 20년 정도 연하로, 안귀솔라의 명성과 작품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첫 번째 자화상을 안귀솔라가 창안한 구도에 따라 그렸던 것이다.

자신을 보필하는 것 같은 다른 여성이 악보를 가지고 바쁘게 다가오고 있는 점도 선배를 따른 것이다. 안귀솔라의 자화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멀리 창문 쪽에 이젤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라비니아 폰타나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화가라는 점을 화면에 명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라비니아 폰타나는 아버지의 제자 중에서 가문이 좋은 남성과 결혼했고, 남편은 화가들의 길드 체계였던 성 루가 조합의 회원이었다. 폰타나의 남편은 그녀처럼 재능이 뛰어나지는 못했다고 전해지며 오히려 부인을 도와 다른 귀족들로부터 그림을 수주하는 역할을 기꺼이 담당했다. 폰타나는 같은 고향 볼로냐 출신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3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고, 여러 성당에서 건물을 장식할 제단화를 맡는 등 그야말로 본격적인 전문 화가로서 손색없는 활동을 해 왔다. 그녀의 60세 생일에는 로마의 화가들이 그녀를 위해 존경의 의미를 담은 기념메달을 주조하기도 했는데, 메달의 한쪽은 폰타나의 측면 초상이, 반대편에는 이젤 앞에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폰타나가 당시에 누렸던 화가로서의 명성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르네상스기 여성화가들이 여성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결합시킨 독특한 자화상을 남김으로써,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미술사에 뚜렷이 새겼다. 그들이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처럼 역사의 획을 그은 화가로 평가되지는 못하지만, 여성 화가들이 ‘위대한 화가’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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