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먹어서 죽는다.”라고 법정이 그랬다. 체해서가 아니고 과식을 해서도 아니다. 동물 위주의 먹을거리가 가져오는 폐해 이야기이다. 숯불가든, 사철탕, 흑염소, 멧돼지바베큐, 촌닭, 할머니뼈다귀탕, 토끼탕들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쉽게 접할 수 있는 간판들이다. 그 간판 숫자와 비례하는 각종 병원 간판은 우연의 일치일까?

요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이야기가 매스컴에 오르며 사회의 불안에 일조한다. 돼지에게 걸리는 병을 인간인 우리가 걱정하는 이유는 돼지고기를 먹으며 살고있기 때문이다. 돼지의 병이 인간들에게 너무도 중요해진 문명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불안한 것이다. 유리의 「돼지 이야기」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배경은 2010년 겨울에 밀어닥친 구제역으로 돼지 332만여 마리가 사람들에게 살처분되는 비극이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그림 속 돼지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통통한 몸을 만져보고 싶게 그렸다.

겨울, 시골의 평범한 돼지 축사 칸칸이 나뉜 분만사에서 갓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고 있다. 일년에 두 번 새끼를 낳을 때만 들어가는 분만사는 분만틀이 몸을 가두고 있어서 새끼들을 핥아주고 안아 주는 동물의 삶은 불가능하다. 태어나자마자 어린 돼지들은 이빨과 꼬리를 잘리게 된다. 3주 동안 어미 젖을 먹은 뒤 두 달쯤 형제들과 지내다가 새끼를 잘 낳을 만한 암컷은 번식 돼지우리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여섯 달쯤 뒤 도축장으로 간다. 

‘구제역‘은 막아지지 않고 사람들은 돼지를 죽이기로 한다. 2010년 인간은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엄마돼지 아기돼지를 모두 산 채로 구덩이로 몰아 살처분했다. 가축법에는 돼지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산 채로 살처분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그건 그저 인쇄된 활자일 뿐 돼지들은 생지옥으로 몰리는 것이다. 

돼지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외출을 하게 된다. 그 외출에서 돼지들이 죽고 난 뒤 썩어가며 내뿜는 가스를 뽑아내려고 꽂아 둔 플라스틱 관으로 흘러들어오는 한줄기 빛을 보며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돼지들의 고통 따위는 고려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처음이 마지막이 되는 외출지인 구덩이 속으로 흙덩이가 쏟아지는 순간에도 헤어진 새끼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어미돼지, 자기 죽음을 앞에 두고도 새끼돼지들을 찾고 있는 어미돼지는 무력하게 선량하기만 하다. 새끼들을 찾아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돼지가족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작가의 소박하며 원대한 꿈일 것이다. 먹지 않거나 먹어도 잔혹하지 않거나 죽이지 않거나 죽여도 고통을 덜어주는 그런 더 나은 방식은 비용과 효용 앞에 언제나 이상으로나 남아야 하는가. 

우리의 식탁은 가장 첨예한 윤리의 잣대가 된다. 밥상에 올라온 음식은 모든 것을 담는 것이다. 음식이라는 목숨의 필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동원했는지는 문명사의 주제이기도 하다. 

돼지이야기는 고기라는 목적을 위해 함부로라는 수단의 표출이다. 목적이 수단을 어마어마하게 정당화하는 우리 문명의 살벌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살벌한 필요와 효용이라는 관점이  인간에게까지 아무렇지 않게 적용되는 세상이 더 확대될까봐 돼지 이야기와 더불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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