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청주오송도서관 사서]2015년 3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일명 ‘김영란법’이다. 이 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을 때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형법상의 뇌물죄에 해당하지 않았던 소위 ‘스폰형 뇌물’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모두 처벌한다’와 더불어 김영란법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왜 이제까지 ‘스폰형 뇌물’이 ‘뇌물’로 규정되지 않았을까? 과거에는 ‘스폰형 뇌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답은 ‘NO!’이다. 1424년, 세종은 ‘스폰형 뇌물’을 근절하기 위한 법을 만든다.

이 법은 지켜졌을까? 자신 있게 법의 초안을 맡았던 영의정 유정현은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늙은이가 향포나 음식을 받는 것이 무슨 해가 되겠소?” 당대 최고 학자와 예학자 변계량과 허조도 즉시 동의했다. “먹는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하필 모두 금할 필요가 있겠소?” 법의 말로가 어땠을지는 누구나 예상 가능할 것이다.

“인간사회에 침투해 있는 뇌물은 잘 다스려야 하는 암세포와 같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범죄 중 하나가 바로 뇌물죄이다.” 이 책, ‘뇌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반복해 온 뇌물과 뇌물금지법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공식적인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바로 ‘공명첩’이다. 저자는 이것을 개인 또는 국가의 타락이나 무능함이 아닌 시대적 한계로 설명한다. “적을 죽인 후에야 나라도 있고 제도도 있다.” 당장 망할 것 같은 나라를 구제하기 위해 시작된 공명첩은 전쟁 종료 후 양반과 양인의 역피라미드구조를 탄생시키며 부족한 양인으로 인한 재정절벽을 초래했다.

결국 나라에서는 다시 공명첩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의 실패한 김영란법 역시 시중에 화폐유통의 실패와 돈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물건을 매입할 가게가 없었던 시대적 한계로 인해 증여, 선물, 친척관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사회적 배경으로 인한 뇌물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진 자 또는 부패를 저지르는 관료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갑을논박을 하는 이유는 과거를 고치고자 함이 아니다. 현재 또는 미래에 그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함이다.

저자는 도리어 실제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의 ‘강무’는 당시 군대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필수사항이었지만 백성들의 고난을 줄이고 부정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그 결과는 임진왜란에서 혹독하게 이어졌다.

조선의 관료들과 현대의 권력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상납의 관행은 없앨 수 없다.” 시대적 한계는 분명히 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체제는 문제가 있다. 뇌물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법은 강력한 법도, 정의로운 규정도, 철저한 교육도 아니다. 이제껏 반복되어 온 뇌물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시대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이 반영된 현실적인 방안과 모두의 실질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뇌물문화가 만연하면 그 집단은 필연적으로 무능하고 탐욕적인 인물들로 채워지게 되며 조직의 상황은 순식간에 악화된다.” 뇌물로 이득을 본 관료는 자신보다 더욱 무능하고 탐욕스런 사람을 선호한다. 우리 사회는 더 빨리, 쉽게 무능하고 위험해질 것이다. 이 위험은 ‘나’만 피해갈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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