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괴산군 칠성면에 위치한 각연사를 품고 있는 보현산으로 겨울 산행을 떠났다. 이어지던 논과 밭은 태성리 마을에서 끝나고 산기슭에 각연사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았다.

신라 법흥왕 때 유일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잠시 경내를 둘러보고 내를 건너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보현산은 온통 참나무로 되어있어 하늘이 파랗게 모습을 드러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참나무를 올려다보니 가지마다 까치집처럼 동그란 모양의 겨우살이들이 낮을 밝히는 푸른 달덩이처럼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지루함을 날려주는 한폭의 풍경화다.

참나무가 주인집이고 그곳에 겨우살이는 세를 들어 살고 있는 것이다. 까치의 도움으로 세를 얻고 이곳저곳에 살림을 차리고 가정을 꾸려나간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가을에 누렇게 익으면 까치가 따먹으며 다른 가지에도 셋방을 차려준다. 부동산과 이삿짐센터 역할을 해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게 됐다. 부모님과 함께 방 한 칸에 부엌 하나 딸린 셋방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 셋방에서 아들딸을 낳아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 서로 싸우기도 하고 소리소리 질러 시끌벅적해졌다. 그러자 주인집에서 시끄럽다고 아이들 조용히 시키라고 싫은 소리를 해댔다. 집 없는 설움이다. 그렇게 셋방살이의 어려움을 겪었다.

겨울이라 산길은 미끄러웠다. 힘이 들었지만 높은 참나무 가지에서 펼쳐지는 겨우살이들의 불꽃놀이에 가슴이 설렌다. 주인집과의 갈등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느낌을 풍겨준다. 주인집과 이해관계 없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생활비를 아끼고 소비를 줄이며 노력했다. 집을 갖고 싶은 염원으로 과소비를 억누르며 악착같이 저축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통장이 제법 뚱뚱해졌다.

드디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작지만 우리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격한 행복을 맛보게 된 순간이었다. 셋방살이 청산하고 멋진 우리 집으로 이사해서 살게 되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소리 지르고 활동하며 살 수 있는 우리 집이다. 누구로부터 간섭받을 일도 이제는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살이에서 참나무로 한 계단 올라섰다.

우리는 평생 집 한 채 장만한다는 게 꿈이다. 집 장만 한다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씀씀이를 줄이고 아끼고 구두쇠처럼 살아도 어려운 형편이다. 셋방살이를 벗어나 내 집에서 간섭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보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마련한 내 집은 과연 내 집이라 할 수 있을까. 참나무에 세들어 살며 내 집으로 착각하는 겨우살이 같지는 않을까.

참나무 가지를 빌려 집 짓고 사는 겨우살이는 자기 집인 줄 알고 살고 있다. 셋방살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내 집인 줄 알고 살고 있지만 어쩌면 지구라는 나무의 한 가지를 내가 잠시 빌려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 집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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