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서태술이 목재에 대한 지불을 현물로 해주기를 원했다.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시골에서 나오는 특산품이야 철철이 정해져있는데 그걸로 변제를 하려면 시일이 괘나 걸릴 터인데 괜찮겠소이까?”

최풍원은 서태술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북진에 장을 활성화시키려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그 일들은 모두 돈이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돈을 만들려면 무엇이든 팔아야 마련할 수 있었다. 물건을 확보하고 그것을 손질해 장터로 내가고 팔아 돈을 만들려면 여간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현물로 목재 대금을 변제한다면 중간 공정이 반은 줄고 그만큼 인력과 시간이 줄어들 것이었다. 더구나 현물을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할 상인에게 넘기니 이득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었다. 한양에서 채마전을 한다는 서태술의 중형도 산지에서 직접 물건을 받으니 훨씬 싼값에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은 당연했다. 그야말로 매부 좋고 누이 좋을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풍원은 철에 따라 나오는 특산물이 각기 다르니 그것으로 현물변제를 하려면 시일이 늦춰질 것을 염려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특산물을 끊이지 않게 대줄 수 있느냐하는 문제였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그만큼 소비하는 물산도 대단할 터였다. 그런 막대한 물량을 이런 궁벽한 산골에서 어떻게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대줄 수 있단 말인가. 박한달은 그것이 걱정되어 물었다.

“한양에서 채마전을 하며 여러 주막집에 물건을 대주는 상전이라면 물량이 대단할 텐데 그걸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소이까, 대행수?”

최풍원에게 물어보는 박한달의 표정이 불안해보였다.   

“그건 염려 마오! 형님네 채마전에 물건을 대주는 상인들은 널려있소이다!”

서태술이 웃으며 박한달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그런데 뭣 때문에 우리한테 특산물을 거래하자 하는 것이오?”

그렇게 거래하는 장사꾼들이 많다면서 무엇 때문에 최풍원에게 특산물을 거래하자고 하는지 박한달은 서태술의 의도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한양으로 가져가면 너도나도 돈을 내놓고 사려고 혈안이 될 귀한 목재를 최풍원에게 넘겨주고 대금까지 일 년이 걸려도 좋으니 특산품으로 갚으라는 서태술의 저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최풍원이 마음에 들어 그러한다고는 했지만 그건 장사꾼들이 자기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입발림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런데 서태술은 그것도 아니었다. 서태술이 가지고 있는 목재는 판로가 없어 걱정할 그런 물건도 아니었다.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으며 행상을 해온 박한달도 사람들에게 후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장사를 해왔다. 그러나 박한달의 후함은 곡물이나 소금 됫박을 좀 후하게 담는다거나 힘든 사람들을 보면 가끔 거저 퍼주는 정도였다.

“내가 여러 해 영춘을 오가며 나무장사를 해왔소이다. 나무장사라는 것이 한겨울만 빼고는 철철이 오르내리는 일이니 이젠 이 동네 사람들보다 이곳 사정을 더 환하게 꿰고 있소이다. 초봄에는 뭐가 나고, 오·유월에는 뭐가 나고, 여름·가을에는 또 어떤 산물이 나는지 훤하다오.”

“그깟 것들 돈이 된답디까?”

박한달이 서태술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박 객주, 그게 아니오! 이 동네 사람들은 그게 지천으로 나니 개 머루 보듯 하겠지만 그게 귀한 곳에서는 신행 오는 사위 같지요.”

서태술이 박한달 이야기에 즉각 반발했다. 

“물론 이곳에서만 나는 산물도 있지만 그래봐야 나물이나 약초 몇몇 가지고, 냉거지는 조선 팔도 어디엔들 나는 것 아니오이까?”

“팔도 곳곳에서 나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나오는 산물과는 다리지요. 한양에는 팔도 방방곡곡에서 올라오지 않는 산물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모여드는 곳이오. 그런데 남한강 상류 이쪽 동네에서 나는 산물들의 질과 맛은 따라갈 수가 없소이다!”

“고기가 좋지, 그깟 나물이야 그게 그거지 여기 거라고 별 수 있겠소이까?”

박한달은 서태술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소이다. 내가 나무 때문에 왔다가 내려갈 때마다 이곳 산물들을 조금씩 가져가는데 물건을 볼 줄 아는 상인들이나 맛을 아는 사람들은 더 구할 수 없냐고 환장들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을 구하려면 때를 맞춰야하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구할 수 없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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