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노고산성에서는 사방을 다 조망할 수 있다. 동으로 남이면 척산리 봉무산도 보이고, 현도에서 부강으로 흘러들어오는 금강 줄기는 물론, 북으로는 부강면 소재지 마을과 세종시 아파트촌까지 한눈에 보인다. 노고산성이 군사적 요충지로 대접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멀리 세종시의 첫마을 아파트촌이 하얗게 보인다. 또한 정부청사 부근의 웅장한 건물들이 다 보인다. 이 성을 쌓으면서 여기 행정 수도 역할을 하는 이른바 '행복도시'가 들어서고 행복도시 근방의 금강 상류에 저렇게 아름다운 다리가 들어설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이 성을 쌓으면서 오늘을 예견한 영웅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다시 뽕나무밭이 된다지만 30년 만에 변한 이 고장을 높은 곳에서 훑어보는 마음이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노고산성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애기바위성과 화봉산성이 있다. 이 산줄기에서 북으로 마주 보이는 산줄기에는 성재산성, 복두산성, 독안산성, 유모산성이 이어진다. 부강면소재지를 감싸고 있는 이 산성들은 세종시의 동쪽에 있는 전월산과 원수봉산성과 이어져 연기향교 뒷산에 있는 당산성과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당산성에서는 바로 서울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편 원수봉산성에서 공주나 부여로 연결되도록 성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

전월산에서 내려다보면 미호천이 금강에 합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합강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합강 주변의 빼어난 경치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대청호에서 잠시 멈추었던 금강의 물줄기는 합강에서 미호천을 끌어안으면서 거대한 강으로 변모하게 된다. 서해에서 금강을 타고 올라오는 물자는 부강 나루에서 뭍으로 옮겨진다. 생활필수품이든 전쟁물자이든 이 물자는 인마의 힘으로 연기를 지나 서울로 가기도 하고 회인 보은으로 이동하게 된다.

노고산성을 비롯한 이 부근의 산성들은 삼국의 경계에서 요새가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고속도로의 역할을 했던 금강의 물자 이동을 감시하는 매우 중요한 시설이었을 것이다. 보은으로 가는 소금 배는 부강나루에서 소름을 부리지 않고 문의 나루까지 올라가서 뭍으로 옮긴 다음 등짐으로 염티재를 넘어 회인 보은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 노고산성은 물자 유통에 매우 중요한 지킴이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강면에서 그랬는지 세종시에서 그랬는지 성내를 평평하게 닦고 여러 가지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 운동기구를 올려다 시설을 해 놓고, 데크를 설치해서 전망대를 만들어 놓고, 원탁 의자까지 들여놓았다. 하긴 산성은 전쟁 때는 싸움터지만 평화시대에는 권력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표조사라도 한 후에 공원으로 만든 것인지, 그렇게 했더라도 문화재를 이토록 훼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화유적은 역사의 증좌이고 민족의 자존심이다. 무너지고 잡목에 묻혀 있는 산성도 안타까운데 잘못된 개발로 인한 왜곡과 훼손은 삼가야 할 것으로 한다.

한여름 오후의 땅기운이 얼굴에 복사열을 쏟아 붓는다. 운동기구를 뒤로하고 애기바위성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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