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충청매일] 6월은 보훈의 달이다. 조국 광복과 국토방위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이 6월에 있다. 국군 27만8천명의 사망과 실종을 포함해 200만명의 인명피해를 가져온 6·26 한국전쟁이 일어난 달이 6월이다. 그러나 현충일은 태극기만이라도 달아 국가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날이 아닌 하루 쉬는 공휴일일 뿐이다.

국가의 존립과 주권 수호를 위해서 신체적, 정신적 희생을 당하거나 뚜렷한 공훈을 세운 사람 또는 그 유족은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그 보상과 관련해 손혜원 의원 아버지 문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 이르기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역사는 변하고 역사의 해석도 변한다. 이에 친일파가 애국자가 되기도 하고, 6·25 한국전쟁에서 남한과 싸운 당사자가 보훈 대상자가 될 수도 있지만 일반인은 혼란스럽다.

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6·25 발발연도를 모르는 학생이 60%에 이르고, 남북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도 60%대에 불과하고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목소리는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다.

국가가 없는 사람에게 자유는 없고, 자유가 없는 삶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 세계 난민 수는 지속해서 증가해 2018년 6천859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국가가 없다. 국가가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든 일상은 하나의 꿈이고 이상이다. 복지를 위해 연금수당을 높일 것인지, 유치원 교육을 위해 보조금을 줄 것인지는 국가가 없는 곳에서는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는 국민의 생존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풍족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그 나라를 일제로부터 찾고,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한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6월에 “나의 염원은 오직 조국의 독립뿐이다.”라고 외친 안중근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름 없는 곳에 묻혀있는 6·25 전사자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프랑스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고 외친 나폴레옹이나, 국가라는 이름과 애국심에 호소해 중국과 싸움을 하는 트럼프,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 태어났다.”라고 한 플라톤과 같은 국가주의자가 돼서는 안 되지만, 국가의 가치와 국가의 소중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정치인들은 서로가 국가를 위하는 일을 한다고 하고, 그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주장이 올바르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 수단으로 진정 국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 정쟁과 이념에 의해 어느 나라나 애국자의 유족과 자손은 피해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6월 보훈의 달에 그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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