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방안에는 소박하지만 푸짐한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상 위에 올려 진 음식만 봐도 이곳이 산골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상 위에는 푸성귀와 산나물이 그릇마다 그득그득 담겨져 있었다.

“사는 것이 누추해 손님을 모셔놓고도 제대로 대접도 못합니다요.”

심봉수의 말투에서 미안함이 뚝뚝 묻어났다.

“나가나 들어가나 여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구먼!”

“곳곳에 굶는 사람이고 나물도 못 먹어 배를 주리는 사람이 처처인데, 나물이라도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그거라도 고마운 일 아니겠소이까?”

박한달이 농담 삼아 던진 말을 서태술이 받아 나물이라도 먹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며 일침을 놓았다.

“아니? 한양에도 굶는 백성이 있단 말이오이까?”

금시초문이라는 듯 박한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양이라고 다 잘 먹고 잘사는 줄 아시오? 시골에서는 산으로 들어가면 나물이라도 뜯어오지만 한양에서는 그러지도 못하고 돈 없는 사람은 생으로 굶을 수밖에 없다오! 돈이 없으면 외려 시골이 그래도 낫지!”

“목상 말을 들어보니 그렇긴 하겠구려!”

“수 년 전부터는 더 심해졌다오.”

“왜 그런거오이까?”

“생각을 해보시오, 팔도 사방에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고향을 떠난 유민들이 하나같이 한양으로 몰려드니 그 사람들을 어떻게 감당하겠소이까. 성 밖에는 거지만도 못한 유랑민들이 득실거리고 있소. 사람들이 그렇게 늘어나다보니 일자리는 딸리고, 일을 하지 못하니 벌이가 없어 양식을 살 수 없고 그저 생으로 굶는데도 조정에서도 뾰족한 방책이 없고, 여하튼 사대문 밖만 나서면 아비규환이오. 관청에서는 유랑민들을 잡아 강제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있지만 먹고 살길이 없어 떠나온 고향을 가봐야 뭐하겠소이까?”

서태술이 주안상을 앞에 두고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우리 대행수는 청풍 고을민들에게 구휼미를 풀고 얼마 전 봄에는 청풍도가에 빚진 고을민들 빚장부를 사들여 모두 불태웠다오!”

“조정에서도 못하는 일을 최 행수가 하셨구려. 참으로 대단하오이다! 역시 최 행수는 여느 장사꾼과는 다른 점이 참 많소이다. 내가 사람을 잘 본 것 같소이다!”

“박 객주는 왜 쓸데도 없는 소리를 한단 말이오.”

서태술의 칭찬에 최풍원이 박한달을 나무랐다.

“벼슬아치나 양반이나 부자들이나 한결같이 자신들 힘으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참 잘못된 생각이오. 장사꾼들도 자기가 장사를 잘해 자기 힘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오!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허깨비요. 사람들이 대신 일을 해주고 그들이 물건을 사주니 사는 것이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없소! 그런데도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요! 내 비록 목상을 하며 여직 살아왔지만, 이제 와 곰곰하게 돌이켜보면 벌목꾼, 목도꾼, 동발꾼, 뗏꾼들이 나를 살려준 은인들이오!”

서태술 역시 여느 장사꾼과는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목상께 배움이 많소이다. 내 비록 잔챙이 장사꾼이지만, 나 역시 목상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있소이다. 내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살려놔야 내 장사도 해먹고 살 수 있지 않겠소이까. 종당엔 내가 살기위해 한 일을 박 객주처럼 고을민들은 나를 은인처럼 생각하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어쨌거나 영춘 땅에서 최 행수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 한량없이 기쁘다오. 앞으로 나 좀 많이 도와주시오!”

“내가 목상을 도와줄 일이 있었으면 좋겠소이다. 도와주기는커녕 만나자마자 이렇게 신세부터 지고 있으니 송구할 뿐입니다, 그려!”

최풍원이 진심으로 서태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저 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갚을 것을 약조하고 주는 것이니 그리 불편하게 생각지 마시오. 그리고 최 행수, 내가 상의할 게 있소이다!”

“내게 상의할 게 뭡니까?”

“이번 목재 값을 대물로 변제해 줄 수 있겠소이까?”

“대물변제라면 무엇으로 해달라는 말이오?”

“실은 내 중형이 광나루에서 채마전을 하며 성안에 있는 주막집에 물건을 대고 있소이다. 최 행수가 여각과 도중회를 관장하고 있으니 이 지역에서 나는 채마와 특산품을 정기적으로 수급해주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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