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무렵, 어느 늙은 재상이 있었다. 그에게는 몹시 사랑하는 반반하고 아리따운 첩이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있는 용을 다 썼다, 하지만 육신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 조금도 그녀를 기쁘게 할 수 없었다. 이에 다급하여 명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랬더니 녹용에 해구육과 해구신을 갈아 가루약을 만들어 매일아침 따뜻한 술에 타서 먹으라고 했다. 재상이 기뻐 그 말대로 여러 달을 힘써 지키며 가루약을 먹었다. 하지만 효험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하인 하나가 재상이 가루약을 먹는 것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생각하였다.

‘재상이 매일 아침 마시는 저것은 필시 귀하고 좋은 약이 틀림없을 것이다!’

어느 날 재상이 새벽 일찍 조정에 들어갔을 때, 그 하인이 몰래 재상의 방에 들어가 그 가루약을 여러 숟갈 퍼먹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 갑자기 양기가 크게 성하여 하인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급한 중에 집안에 일이 있다고 거짓을 말하고 서둘러 고향에 내려왔다. 그날부터 아내와 밤낮으로 떨어지지 않고 정을 나누었는데 보름이 후딱 지나고 말았다. 하루는 재상이 그 하인을 찾았다.

“그놈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서둘러 알아보고 불러오너라.”

며칠 후 그 하인이 올라와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재상이 물었다.

“무슨 병이라도 앓았던 모양이구나. 얼굴이 어찌 그리도 핼쑥하고 야윈 것이냐?”

이에 하인이 잠시 주저하더니 재상에게 아뢰었다.

“제가 어찌 감히 재상을 속이겠습니까. 사실은 보름 전에 재상께서 매일 드시는 약을 몰래 서너 숟가락 훔쳐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양기가 크게 성하여 급히 집에 내려왔습니다. 아내와 여러 날을 보냈는데 그 양기가 조금도 식을 줄 몰랐습니다. 그 일을 그만두어야지 하다가도 너무 좋은 나머지 그치지 못하여 이렇게 몰골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속히 돌아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재상께서 벌을 내리시면 달게 받겠습니다.”

재상이 하인의 말을 다 듣고는 바로 표정이 슬퍼졌다. 이내 탄식하여 말했다.

“원래 늙은이에게는 세상의 어떤 보약도 쓸모가 없는 것이로다. 내가 그 약을 여러 달 동안 먹었으나 효과가 털끝만치도 없었다. 그런데 젊은 네가 몇 숟갈 먹은 것뿐인데 그 효과가 그리도 크고 오래간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구나. 내가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하고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해도 너를 보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생각해보니 약이라는 것이 그렇구나. 늙은이에게는 효과가 없으니 쓸모가 없는 것이고, 젊은이에게는 효과가 넘치니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그냥 둘 수 없겠다.”

하고는 그 귀한 약을 친히 마당에 모두 뿌려버리고 말았다. 이는 조선시대 서거정이 편찬한 유머집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백약무효(百藥無效)란 늙거나 병이 아주 깊어서 세상에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낫지 않음을 말한다. 약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밥보다 못하고, 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한 시간을 걷는 것보다 못하다. 건강할수록 몸을 자주 움직여야 인생이 즐거운 법이다.   aionet@naver.com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