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윤회(尹淮)는 세종 때 외교 문서를 전담하였고 집현전 신설에 크게 기여한 문인이다. 윤회가 젊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날이 저물어 주막을 찾아 들어갔다. 주인이 윤회의 차림을 보니 꾀죄죄하고 돈도 없어 보여 재워 주려 하지 않았다.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오늘은 방이 다 차서 주무실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윤회가 다급한 마음에 물었다.

“방이 없으면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묵고 가게 해주시오.”

그러자 주인이 마지못해 거적 하나를 내주어 흙바닥에 깔고 자도록 허락하였다. 저녁을 먹고 윤회는 헛간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 거위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윤회는 그저 거위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때 예닐곱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쫄랑쫄랑 마당에 뛰어나오다가 그만 윤회 앞에서 동그란 구슬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놀라서 그 구슬을 찾느라 땅바닥 이곳저곳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 잠깐 사이에 윤회는 거위가 무언가 꿀꺽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다. 계집아이는 한참을 찾아보아도 구슬이 보이지 않자 그만 주막 안을 향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버지! 엄마 진주 구슬이 없어졌어요.”

“뭐라고? 그 보석을 잃어버렸다고?”

주인은 소리를 듣고 바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윤회를 쳐다보았다.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저 놈이 진주 구슬을 훔쳐갔다. 내일 관가에 고발할 참이니 꽁꽁 묶어라!”

갑자기 상황이 위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윤회는 저항도 하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고 순순히 밧줄에 묶였다. 그러면서 주막 주인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주인장! 아침까지 저 거위를 내 옆에 같이 묶어두시오.”

주인은 화가 났지만 내일 관가에 가면 다 밝혀질 일이라, 부탁대로 거위를 그 옆에 묶어 두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윤회가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장 나를 관가로 끌고 가기 전에 먼저 저 거위의 똥을 자세히 살펴보시오.”

주인이 말대로 거위 똥을 살펴보니 과연 그 곳에 어제 잃어버린 진주 구슬이 있었다. 주인은 너무도 놀랍고 당황스러워 그저 넙죽 엎드려 사죄하였다.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손님께서는 왜 진작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윤회가 옷을 툭툭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했어도 주인장은 믿지 않았을 것이오. 혹시 믿었다고 하면 진주를 찾으려고 당장에 저 거위를 죽였을 것이오. 조금 불편해도 잠시만 참으면 거위도 살고 진주도 찾고 나를 풀어줄 일이니 말을 안했던 것이오.”

주인은 크게 감복하여 다시 넙죽 크게 절을 올렸다. 이는 윤회가 지은 ‘청경집(?卿集)’에 있는 이야기이다.

침묵적요(沈默寂寥)란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말과 행동이 침착해야 한다는 뜻이다. 갑작스런 일을 당하면 품행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소인은 무엇을 할지 몰라 허둥댈 것이고 군자는 침착하여 일의 순서대로 잘 풀어나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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