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유월이다. 유월은 우리 역사에서 동족끼리 총을 겨누며 죽이고 도망다닌 아픈 기억을 소환하는 때이다. 동족, 민족, 가족 같은 낱말들은 세계화를 언급하고 해체를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아릿하고 안도를 주는 관계망이 된다. 그러니 좋으면 천국, 안좋으면 고통을 겪게 되는 관계이다. 없으면 외롭고, 있어서 슬픈, 그래도 함께 비비려는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혜란 작가의 「우리 가족입니다」이다.

단칸방이 딸린 작은 중국집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살고 있다. 아이들 둘과 엄마 아빠가 한 가족이다. 할머니가 계시지만 어쩐 일인지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따로 살고 있고 지금도 혼자 사는 게 좋다고 하신단다. 아이는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먼 시골에서부터 택시를 대절해서 이 중국집으로 온다. 할머니와의 생활은 일상이 뒤흔들리는 사건 투성이 이다. 주인공도 그런 할머니가 밉고 시골로 다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함께 산 적도 없고, 보살펴 준 적도 없고, 좋은 추억도 없이 괴롭게만 하는 할머니에게 어린 아이가 호감을 표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여러 방법으로 할머니를 밀어내 보지만 아빠와 엄마의 무언의 행동은 할머니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 책은 글과 함께 오래된 거리와 건물의 풍경이 수더분하다. 가난해서 고단하지만 순수함과 인정이 살아있는 신흥반점 이라는 음식점 간판과 진솔한 풍경들을 담고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나타나는 사건들은 서민적이고 솔직하고 현실적이다. 언어 표현은 정제되어 있고, 그림은 솔직하다. 평범한 네 식구의 가족사진, 소박하게 차려진 양은 밥상이 그려진 속표지는 미화되거나 꾸며놓지 않은 우리들 사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빠. 할머니 오셨어요,”

“택시 아저씨가 돈 많이 달래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읽힌다. 절제된 글과 실제적인 그림은 저절로 공감과 재미를 준다. 엉덩이가 다 보이도록 찢어진 할머니의 옷, 할머니랑 같이 밥 먹기 싫다고 투정하는 나, 묵묵히 생선가시를 발라 할머니 숟가락에 얹어 주는 아빠. 옷장 젓갈에서 나온 구더기를 치우는 엄마, 어질러진 세간, 힘겨워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 홀에 손님이 있는데 훌러덩 옷을 벗어도 손님들은 아랑곳 않고 맛나게 자장면을 먹어준다. 무관심이 아니라 격한 공감이며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다.

거리에서 잠든 할머니를 업은 아빠의 불거진 힘줄, 아빠의 등보다 훨씬 커다란 할머니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왜소한 엄마 모습은 눈물겨운 장면이다. 이 관계를 작가는 명쾌하게 정리한다.

“아빠,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안 돼, 엄마니까. 할머니는 아빠 엄마거든.”

가족사진은 다섯 명이 되었다고.

누군가 가족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존재라 했다. 그러나 다시 주워오고 싶은 존재 또한 가족이다. 서양에서 family는 라틴어가 어원이다. 고대 로마에서 하인이나 노예를 가리키고, 논, 밭, 집, 가축처럼 한 남자에 속한 생산도구를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우리는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져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구성원으로 정의한다. 버리고 싶어도 아주 버리지 못하는 관계, 버려도 다시 주워오고 싶은 관계라면 미리미리 덜 버리고 싶도록 할 수는 진정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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