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노고산성에는 '늙은 시어머니산'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대전시 동구 직티리의 노고산성이나 보은의 노고산성이나 전국의 많은 노고산 또는 노고산성에는 비슷한 유형의 전설이 전한다. 여성신을 숭배하는 민간신앙에서 나온 전설이라고 생각한다.

“옛날 이곳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의 장사 가족 일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아버지와 아들은 산신의 노여움을 사고 힘을 빼앗겨 돌덩이 하나 잡아 올리지 못하는 평인으로 돌아가게 돼 마침내 병을 얻어 죽고 아들도 그 뒤를 따랐다. 졸지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남게 되었는데, 두 과부가 한집에 사는 것은 부끄러우니 서로 나가라고 싸웠다. 밤마다 싸우는 소리에 이웃은 견딜 수 없었으나 워낙 그 힘을 알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속만 태우는데 하루는 산신이 장사 고부姑婦를 산신각으로 불러내어 명령을 내렸다.

시어머니는 가죽치마에 돌을 날라 성을 쌓는 일이고 며느리는 박달나무 널판자로 문주산을 허물고 들을 만드는 것으로 백일 기한을 주었다. 명령을 내리고 산신이 가만히 상황을 보니 시어머니가 성을 먼저 쌓을 것 같았고 은근히 며느리를 동정하게 되었다. 이에 산신은 술수를 써서 시어머니의 앞치마를 타개 놓고 옻나무에 닿게 해 치마를 꿰매고 가려움증에 시달리게 해 성 쌓는 일을 지연시켜 마침내 며느리가 이기게 되었다. 이로써 내기에 진 시어머니는 이곳을 떠나 만뢰(현재의 진천) 땅에 들어가 성을 쌓으며 여생을 보내다 죽었다. 그리해 오늘날 그때 쌓은 성을 늙은 시어머니가 쌓았다 해 노고성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약한 며느리와 성격 나쁜 시어머니의 '힘겨루기' 전설이다. 시어머니 전설과 오누이 힘겨루기 전설이 합해진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청주 초정의 구녀성은 오누이 힘겨루기 전설이 전하는데 노고산성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힘겨루기 전설이다. 전설의 경우 대개 주인공이 패배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노고산성 전설은 나쁜 시어머니가 패배해 권선징악이라는 민중의 정신이 부도덕한 시어머니를 응징하는 민중 공동심의로 승화해 내포되었다. 전설은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면서 지역과 민중의 가치관에 의해 변형 굴절되는 경우도 많아 이런 본보기가 아닐까 한다.

가파른 길을 마지막으로 올라가니 사방이 탁 트인 성의 내부가 나타난다. 노고산성은 노고산 정상부를 빙 둘러싸면서 타원형으로 쌓은 테메식 산성임이 뚜렷하다. 한 40명 정도의 군사가 주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내에서 보니 북쪽으로는 산세가 완만하지만 남쪽으로는 경사가 급해서 지형을 이용한 축성으로 방어에 효과적일 될 것 같았다. 성 전체의 둘레가 〈청원군지>나 <한국의 성곽과 봉수>에 196m라고 기록되었는데 어림짐작으로 봐도 그보다는 훨씬 클 것 같다.

북쪽 경사면에 무너진 성벽으로 보이는 돌무더기는 봉수대를 쌓은 성돌처럼 정교하게 다듬은 돌이 아니고 자연적인 막돌이었다. 처음에는 너덜인가 했으나, 너덜이 있을 산이 아니니 자연석으로 쌓은 성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성벽의 원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장미산성의 축성법과 대조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설상으로 고구려산성이라지만 축성양식이나 역사적으로 신라산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