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알겠소이다 심 객주, 그리 하십시다!”

“예까지 오신 대행수를 제 집으로 모셔야 도리인 줄은 아오만 집이 허술하고 갑작스런 일이라…….”

심봉수가 최풍원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지 못함을 죄만스러워 했다.

“아니오, 심 객주! 그리 마음 쓰지 마시오!”

최풍원이 손사래를 치며 심봉수 마음을 달랬다.

“집에 가 채비를 해서 내일은 대행수를 저희 집으로 모실 터이니 섭섭한 생각 거두고 오늘밤만 예서 주무시죠?”

“괜찮으니 과히 마음 쓰지 마시오!”

최풍원의 위로에도 심봉수는 못내 섭섭해서 돌아가는 뒷모습이 비척거렸다.

심봉수가 돌아가고 최풍원은 강수를 데리고 주막집을 나와 강가를 따라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눈앞에 강물이 나오고 강 건너로는 물가를 따라 수십 척 벼랑이 어스름에 묻혀있었다.

“강수야, 보름이 턱 밑이지?”

“예, 대행수! 사흘 뒤면 보름입니다요.”

“곧 달이 뜨겠구먼!”

최풍원이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밝아져오는 빛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강 건너 벼랑을 왼편에 두고 강가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강수야 너는 우리 북진여각과 청풍도가와의 싸움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무슨 말씀이온지?”

최 풍원의 느닷없는 물음에 동몽회 대방 강수가 진의를 알지 못해 되물었다.

“너는 도식이와 함께 청풍도가에 여러 해를 있었으니 그간 청풍도가가 어떻게 자신들의 상권을 지켜왔는지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

“그런 것은 김주태와 도가 상인들이 한 것이고, 지들이야 장마당을 돌아치며 장꾼들이나 뜯으며 살았는데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요.”

강수가 최풍원의 물음을 피하려 했다.

“양반들 싸움이나 상인들 싸움이나 결국 힘겨루기 아니겠느냐? 돈 있는 놈은 돈으로 죽였겠지만, 돈으로 누르나 힘으로 누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종당에는 힘이 해결하지 않았겠느냐?”

“대행수께서 답을 다가지고 계시는데 제가 무슨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청풍도가와 붙게 된다면 우리 동몽회가 도가 무뢰배들과 붙어 승산이 있겠는가 하는 걸 물은 것이다.”

최풍원이 강수에게 물어본 것은 만약 북진여각과 청풍도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면 종당에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것이고, 그걸 경우 서로 간에 거느리고 있는 무뢰배들이 승패를 좌우하는 큰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행수, 지들 싸움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뒷배입니다!”

“뒷배라니?”

“지들이 백 번 싸워 이겨도 뒷배가 없으면 말짱 헛것 아니겠습니까? 청풍도가는 청풍관아와 관계를 돈독하게 맺고 있어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몽땅 눈감아줍니다. 그러니 우리도 맘 놓고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최풍원도 청풍도가와 청풍관아와의 유착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권력과 돈과 힘이 모든 열쇄를 쥐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관아의 권력은 핵심이었다. 권력은 관리들의 전유물이었다. 관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이 모든 일을 쥐락펴락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의 백성네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 주눅 들고 죽어 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관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이 없어도 거드름을 피우고 행세를 했다. 청풍부사만 해도 그랬다. 관아 동헌에 앉아만 있어도 부자나 상인들이 무언가 싸들고 와 굽실거리며 바쳤다. 일도 하지 않고 남의 돈을 받으면서도 외려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해서 올 때는 맨 불알로 왔다가 돌아갈 때는 바리바리 싸가지고 돌아갔다. 잠시라도 꿈적거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입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백성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남의 것을 거저먹을 수 있는 사람이 관리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그럴 힘이 없으니, 일을 하면서도 항시 불안하겠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요. 그래도 대행수 밑에서 일을 하면서는 외려 떳떳합니다. 우리라고 장꾼들 등을 처먹으며 좋았겠습니까요? 북진에 와서는 여각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도 일을 하며 밥을 먹으니 마음이 편합니다요!”

“아직이야 청풍도가와 크게 부닥칠 일이 없었으니 그러했지만, 머지않아 우리 북진여각과 자꾸 충돌이 생기겠지. 그러면 도가에서 우리를 견제할 것이고 종당에는 관아도 끌어들이겠지. 그러면 우리도 대거리를 하기 위해 또 다른 개를 만들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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