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온달산성은 신라와 고구려가 영토 확장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던 곳으로 고구려 온달장군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전초기지 작은 산성이다. 산성의 크기는 영춘 고을처럼 아담하지만 두 나라는 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결국 고구려 평원왕의 부마인 온달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이곳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이미 오랜 옛날부터 영춘의 지리적 위치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영춘은 백두대간의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고을이다. 백두산에서부터 대차게 뭉친 정기를 품고 힘차게 뻗어 내리던 백두대간이 강원도 태백산에 이르러 남서진하다 다시한번 불끈 솟아오른 곳이 소백산이다. 소백산은 큰 등줄기를 이루며 충청도와 경상도를 구분하고 태화산은 충청도와 강원도를 구분한다. 다시 말하면 영춘에서 강 건너 소백산을 넘으면 경상도 풍기 땅이고, 영춘의 뒤를 받히고 있는 태화산을 넘으면 강원도 영월 땅이다. 뿐만 아니라 소백산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관적령·마아령·여촌령을 넘으면 경상도의 여러 마을과 통하는 순흥 땅이고, 남한강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원도의 영월 땅과 곧바로 연결되는 곳이 영춘이었다. 그렇다보니 영춘은 충청도에서 경상도와 강원도를 잇는 요지에 위치하여 오래 전부터 이 지역을 오가는 보부상들을 통해 물산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미리 기별도 없이 대행수께서 예까지 어인 일로 오셨답니까?”

최풍원 일행이 영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영춘객주 심봉수가 황망하게 묵고 있는 주막으로 달려왔다.

“북진 턱밑에 사는 나도 급자기 전갈을 받고 선자리에서 입은 입성 이대로 왔다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심봉수의 물음에 박한달이 느닷없이 불려나온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대신 대답을 했다.

“심 객주와 급박하게 상의할 문제가 있어 그리 됐소이다.”

최풍원이 두 객주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행수께서 기별도 없이 이렇게 먼 곳까지 왕림하신 것을 보면 보통 일은 아니겠고, 대체 그 급한 일이라는 게 뭐인지요?”

“심 객주도 지난 번 도중회의를 지켜봤으니 알고 있겠지만, 북진에 장을 열고 저잣거리에 상전과 가가를 세우려면 많은 목재가 필요한데 그걸 상의하려고 이렇게 기별도 없이 급하게 왔소이다!”

“집 질 목재라면 아무거나 써서 될 일이 아닙니다요!”

“나무면 다 같은 나무 아니오이까. 집 지을 목재가 따로 있다는 말이오?”

“여부가 있습니까요. 나무도 용도가 다 따로 있지요. 대청 상기둥에 쓰일 놈, 대들보에 쓰일 놈, 도리에 쓰일 놈, 중방에 쓰일 놈, 서까래에 쓰일 놈 등등 사람 낯짝 다르듯 목재도 모두 용처가 다르지요.”

최풍원의 물음에 박한달이 아는 체하며 심봉수 대신 답을 했다.

“그것이 아니라 땔감이나 허접한 일에 쓸 목재는 아무거나 생나무를 베어 써도 되겠지만 집 짓는 제목은 벌목을 해서 묵혔다가 써야 합니다요!”

심봉수가 박한달의 빗나간 답변을 바로 잡았다.

심봉수가 최풍원에게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은 나무의 용처가 아니라 나무를 목재로 다듬기 전의 공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무의 용처야 일일이 이야기를 다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게 우리네 살림에 쓰였다. 그 쓰임이 금방 쓰고 버릴 일상 물건에서부터 수백 년을 써도 변함이 없어야 할 그런 물건도 있었다. 전자 같은 물건이야 시시때때로 아무 때나 필요하면 베다 써도 무방하지만 한 번 만들면 오랜 세월을 써야하는 그런 물건은 함부로 그리 쉽게 할 수 없었다.

특히 사람이 들어가 살 집이라면 벌목부터 갖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 쓰일 제목은 생나무를 그대로 쓸 수 없었다. 벌목을 해서 짧게는 한·두해, 길게는 십 년도 넘게 갈무리를 했다가 쓰기도 했다. 나무를 말려 뒤틀림을 막고, 수년 동안 물속에 담가 나무속에 들어있는 충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최소한 집 지을 나무를 준비하려면 최소한 벌채를 해서 사계절은 갈무리를 해야 할 일이었다. 심봉수는 최풍원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큰일이구려! 이번 여름이 오기 전에 상전을 마무리해야 그 다음 일을 추진할 수 있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오!”

최풍원은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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