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이정희씨, 20년간 쓴 일기장 아들에게 전달…함께 성장하는 과정 담겨

이정희씨가 성년의 날을 맞아 아들 이재준군에게 20년 간 써온 편지형식의 일기장과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이정희씨가 성년의 날을 맞아 아들 이재준군에게 20년 간 써온 편지형식의 일기장과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충청매일 최재훈 기자] “재준이를 위해 엄마가 준비한 마음의 선물이야. 너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들어 있단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엄마가 노력한 흔적인 셈이지. 엄마의 마음을 받아줘.”

이정희(53·청주시 교통정책과)씨는 20일 성년의 날을 맞아 20년간 써온 편지형식의 일기장을 둘째 아들인 이재준(19)군에게 전달했다.

1999년 6월 재준군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 후 처음 쓰기 시작한 일기는 재준군이 만 19세 되는 성년의 날에 끝났다. 일기장에는 재준군이 처음으로 앞니가 났던 날의 느낌, 감기가 걸려 속상해 하던 마음들이 촘촘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재준군이 초등학교에 올라가 거짓말을 하자 화가나 손찌검을 한 후 가슴아파했던 기억들이 담겨있다.

재준군이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때는 얼굴에 여드름이 심해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애를 먹었던 마음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미용대회에 나가 입상 했을 때 가슴 뿌듯했던 기쁨이 담겨 있었다. 또 엄마는 재준군이 대학교에 입학한 후 대학생활이 행복하다는 말을 하자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심정이 담겼다. 엄마의 일기는 보통의 아이들과 같이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하루는 좋고 하루는 속상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20년간의 희로애락을 통해 엄마와 아들이 함께 성숙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 2000년 8월 20일 ‘재준이의 앞니가 났다.’

“재준이 이가 두 개 났어. 누나보다 엎치기도 빨리하더니 이도 벌써 났지 뭐야. 요즘 엄마는 재준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방긋방긋 웃는 모양이 왜 그리 이쁜지. 엄마는 재준이가 너무 예쁘다.”

이씨는 첫째 딸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재준군을 보면서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며 성인이 됐을 때 일기장을 줄 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써나가기 시작했다.

# 2002년 7월 1일 ‘재준이가 병원에 입원했다.’

“누나와 함께 씻기려고 먼저 욕탕에 들여보냈더니 화장실 청소하는 크레졸을 마셨다. 입안에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겁이 나 바로 응급실로 갔다. 위세척을 하는데 눈 뜨고는 볼 수가 없다. 어른도 죽겠는데, 어린 것이 오죽하랴. 아들아 건강하게 크거라.”

이삿짐을 정리하던 날 정신이 없어 잠시 눈을 뗀 사이 크레졸을 마셔서 정말 놀랬다며 엄마는 지금도 당시 생각을 하면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2007년 10월 12일 ‘재준이가 성향 검사를 했다.’

“재준이가 성향검사를 했다. 남자상이 부족해 놀이치료를 해야 한단다. 마음이 아프다. 정신이 건강하게 자라주어야 하는데 잘 극복해 갈 거라 믿는다. 아들, 힘내고 세상은 늘 네 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소극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런지 또래 남자아이들보다는 여자아이들과 더 많이 어울렸고 놀이치료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엄마입장에서 힘들었지만 항상 엄마는 네 편임을 잊지 말거라 하는 엄마의 마음이 일기장에 담겨있다.

# 2019년 3월 15일 ‘대학교에 입학해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엄마! 대학생활이 너무 행복해요,’ 재준이의 말의 의미는 시간의 자유가 가져다주는 행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처럼 틀에 박혀 사는 생활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자유로움이 좋다는 느낌이다. 재미나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한다니 걱정도 다 기우다. 고등학교 때 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도 잘 생활하고 있어 고맙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재준군이 대학교에 들어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고 아직도 “품안에 자식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정말 내게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 2019년 5월 20일 ‘성년의 날이다.’

“세상에 하나 뿐인 아들 재준이 성년이 되는 날이다.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늘 조마조마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식이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키우려 나름 노력했다. 네가 어릴 때 엄마는 많이도 울었다. 어린나이에 남과 다름을 네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네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걱정이 많았던 건 엄마의 기우였다. 잘 커준 네가 무엇보다 고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 하거라. 이 일기가 네 인생에서 힘들 때마다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따뜻한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마지막 일기를 읽고 성인의 날을 축하하는 꽃다발과 함께 일기장을 건네주자 재준군은 수줍어하면서도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20년 간 써왔던 일기장속에는 엄마의 숨겨진 마음 속 이야기가 자세히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준군은 “엄마에게 항상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성년의 날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아도 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하다. 일기를 보니 엄마의 가슴속 마음이 나에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성년이 된 것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일기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늘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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