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빛깔 고운 봄꽃들에 이어 연연한 나뭇잎으로 세상이 온통 숲의 향연을 열어가는 시절이다.  모처럼 서울행 버스에 오르며 꽃이 주지 못하는 연두빛 수채화를 내내 보려는 기대를 품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연두빛이 희망으로 충일했다.

버스가 한참을 달려 길 위 이정표가 수도권 진입을 알렸다. 아뿔사! 언제부터인가 늘 그렇듯 산 중턱이 벌겋게 파헤쳐저 있고, 주변에 새 집들이 내기하듯 들어서는 낯익고 낯설은 풍경들이 차창 가득 옹송거렸다. 마침 그림책 수업을 하러 가는 중이었고, 강의 교재는 정진호 작가의 「투명나무」였다. 인간의 자연 파괴 때문에 나무들이 땅속으로 숨어버려 삭막해진 땅 위와, 끊임없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투명나무들의 세계를 멋진 구도와 예쁜 색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책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우리에게 더구나 어린이들에겐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린이의 눈높이를 충분히 고려했고 어른들에게는 상처받지 않도록 이야기하는데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연을 이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탐욕스럽게 개발해온 인간의 세계와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나란히 놓는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숲속 1번지는 투명나무들이 사는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다. 투명나무들은 풍요하고 평화롭게, 동물들과도 화목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이 톱과 도끼와 중장비를 동원해 숲을 없애기 시작한다. 숲속에서 살 수 없게 된 투명나무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잃어버린 투명나무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생명에 주목하도록 한다. 

이 책에서 투명나무는 봄을 맞아 움트는 새싹 즉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 생명이다. 숲속1 번지라는 평화로운 장소에서 동물들도 그들의 존재를 경이롭게 지켜보고, 어린 생명들은  활기차게 존재를 드러내면서 멋지고 힘있는 나무로 성장하여 주변과 어울리며 행복한 숲의 일부가 되고 행복한 숲을 만들어 간다. 인간이 파헤친 땅 위에 빌딩이 계속 지어지고, 인간들이 더 넓은 공간을 탐할수록 땅 위의 다른 생명체들은 자기 자리를 조용히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땅속에서는 다시 투명한 빛의 여린 생명들이 뿌리를 내리며 흙 속의 생명체들뿐 아니라 바다의 생명체들과 어울리며 무한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투명나무들을 단지 외쳐 부른다고 우리들 곁으로 와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두려운 힘을 숭배하던 원시적 사고에서 벗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자연을 함부로 대우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자연이 언제까지 인간을 위해 곁에 남을 수 있을지는, 언제까지나 마냥 인간의 실수와 이기를 견뎌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이 작품은 조용히 제시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그 경이로움과 생명이 주는 풍요를 누리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지구라는 공간의 한 구성원인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개인의 차원과 공적 차원에서 생각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작은 아이들이야말로 투명나무다. 그 여린 손에 따스하고 감동어린 그림책을 펼쳐주고 아이의 내일과 지구의 미래를 나직하게 이야기해도 좋을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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