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청풍도가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다하지만 청풍장에 대한 사람들 생각이 워낙에 뿌리가 깊으니 그리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거요.”

“그야 그렇지요. 부자 망해도 삼년은 간다지만, 잔 매에 장사 있답디까? 자꾸 두들기다보면 꺼꾸러질 때가 있겠지요.”

“박 객주 말처럼 어서 우리도 북진장에 저잣거리와 상전을 만들고 북진나루 포구도 대선이 맘 놓고 드나들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쳐야하는데 이차저차 걱정이 많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요. 내 장사 하나만해도 동동거리는 판에 여각과 여러 객주들을 건사해야 하니 대행수 어깨가 너무 무겁습니다요.”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덧 눈앞에 절경이 펼쳐졌다. 푸른 강물을 뚫고 수십 수백 척 바위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옥순봉이다. 일행들이 옥순봉 아래 백사장에 다다라 잠시 풍광에 빠져들었다.

“참으로 절경이외다!”

“단양 팔경 중에서 이만한 절경은 없지요. 오죽하면 옥으로 만든 대나무순 같다 했겠소이까. 희고 푸른 저 바위들 색을 보시오. 정말 옥순처럼 보이지 않소이까?”

박한달이 손가락으로 쭉쭉 솟아있는 바위들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정말 바위 색깔이 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최풍원도 맞장구를 쳤다.

“대행수 저 옥순봉이 청풍 관내인대도 불구하고 단양팔경으로 들어간 연유를 알고 있소이까?”

박한달이 옥순봉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청풍에서 단양으로 가는 방법은 육로와 물길 두 가지였다. 대부분 백성들은 육로를 통해 이 길을 오갔지만 양반님네들이나 부자들은 험한 육로보다는 빠르고 편한 물길로 배를 타고 다녔다. 옥순봉은 청풍과 단양의 경계에 있었다. 청풍으로서는 관내의 제일 끝에 단양으로서는 관내로 들어가는 초입이었다. 그런데 옥순봉이 청풍 관내에 속하면서도 단양팔경에 들어가게 된 것은 삼백여년 전 단양군수로 있었던 대유학자 퇴계 이황에 의해서였다. 퇴계는 돌기둥이 죽순처럼 솟아있는 희고 푸른 봉우리들을 일고 있는 빼어난 경치의 옥순봉을 관람하고 단양의 일곱 개 경승지인 상선암·중선암·하선암·도담삼봉·석문·사인암·구담봉에 옥순봉을 넣어 팔경을 갖추고자 하였다. 그래서 청풍부사를 찾아가 옥순봉을 단양에 달라고 청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퇴계는 돌아오는 길에 도인들이 사는 단양으로 들어가는 문이란 의미로 ‘단구동문(丹丘洞門)’이란 네 글자를 옥순봉 석벽에 새겼다. 이때부터 옥순봉은 청풍 관내에 있으면서도 단양팔경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옥순봉에서 잠시 풍광에 빠져있던 일행들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괴곡을 지나고 벌말을 지나 장회나루에 다다랐다. 장회나루에서 바라다보는 구담봉과 강 건너 풍광 또한 절경이란 말이 무색하다. 이제 장회부터는 단양 관내였다. 일행들이 꽃거리·중방·단양 우화교를 건너 놋재를 넘어 가곡·북벽·향산을 지나 군간나루·하리나루를 건너 영춘현에 당도했을 때는 하루해가 저물 때였다. 험한 산길은 말할 것도 없고 나루를 몇 개나 건넜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물을 건넌 그런 깊숙한 곳에 영춘이 있었다. 영춘은 한마디로 산에 묻히고 물에 둘러싸인 그런 고을이었다. 영춘이 비록 남한강 최상류의 오지의 고을이었지만 그렇다고 위세가 약한 그런 궁벽한 곳이 아니었다.

영춘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현이었다. 영춘이 산과 물에 파묻혀 상대적으로 왜소한 고을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중요한 고을로 대접을 받았다. 영춘에 들어서면 우선 먼저 형제봉·태화산·신선봉이 우뚝하게 솟아 수호신처럼 영춘현을 감싸고 있다. 고을의 앞으로는 멀리 소백산이 등줄기처럼 우람하게 뻗어내려 있다. 이처럼 험준한 산악의 영향으로 고을 전체가 산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남한강이 고을의 북쪽에서 흘러들어와 서쪽으로 휘어져 흐르고 남천·사원천이 남한강으로 흘러들며 합류한다. 본래 영춘은 강원도 원주에 속하는 고을이었다가 충청도로 이속된 것은 조선 초 태종 때였다. 영춘의 역사는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시대 영춘은 을아단현이었고, 통일신라 때 자춘으로 고쳐 내성군이 되었다. 영춘은 고구려와 신라가 소백산과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영토전쟁을 벌였던 접경지대였다. 지금도 영춘 남쪽 하리나루를 건너면 강가 절벽 봉우리 위에 작은 산성이 하나 있다. 온달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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