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본래 한양에서 내려오는 경강상인의 경강선이나 가까운 지역을 오가며 짐을 실어 나르는 지방민의 지토선에 대한 선세는 청풍관아에서 관장했다. 그렇게 거둬들인 선세는 관선을 새로 짓거나 고을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나루터 보수를 하는데 쓰이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선세가 청풍관아에서 청풍도가로 넘어갔고, 그 용처도 어떻게 쓰이는지 흐지부지해졌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부사나 아전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나라의 세금 징수권을 일개 장사꾼들의 모임인 도가에 넘긴다는 것은 나라 살림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집안 꼬라지가 안 되려니까 며느리 턱주가리에 수염이 돋고, 나라가 망하려니 허깨비 같은 임금을 앞세워 외척들이 왕 노릇을 하니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임금이 하던 외척이 하던 아니면 동네 불출이가 나라 살림을 하던 백성들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백성들은 작대기가 용좌에 앉아있더라도 배만 부르고 등 따시면 그걸로 족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 못했다.

임금이 하나일 때는 하나만 뜯어가더니 임금 노릇하는 것이 여럿 되다보니 뜯어가는 놈도 그 수만큼으로 늘어났다. 존귀하신 나랏님 네나 비천한 백성이나 사람 욕심은 매한가지였다. 사람이라고 생겨먹은 놈들치고 욕심 없는 것들은 없었다. 문제는 제 욕심을 채우려면 제 것은 풀지 않고 남의 것만 빼앗으려하는 데 있었다. 세상에 제 것 아깝지 않은 팔불출이 있을까. 정당한 거래가 아니고 누군가 억지로 제 것을 빼앗으려하는데 가만히 있을 천치는 없었다. 짐승도 제 밥그릇을 빼앗으려하면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것이 세상 이치였다. 그러다보니 돈 있는 놈은 돈을 가지고 권력이 있는 놈은 권력을 이용해 억지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았다. 언제나 한 치도 빈 틈 없이 결국 당하는 것은 먹이사슬의 제일 끝에 있는 백성들이요 고을민들이었다. 부자와 관리들은 자신들의 뱃속에 든 재산을 지키기 위해 때로 견제하고 서로 담합을 하지만 피라미 백성들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힘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 돈과 권력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박 객주, 청풍도가에서 관아에 뭘 먹였을까요?”

“관아에서 징수하던 선세를 받았다면 뭔가 큰 덩어리를 앵겼겠지요? 어쨌든 도가에서 경상들에게 선세를 대폭 올렸으니 그걸 빼니 경상들도 물건 값을 대폭 올릴 터이고, 또 행상들도 대폭 올릴 것 아니겠소이까? 청풍도가에서도 뭔가 큰 것을 관아에 바쳤으니 어디에선가 그걸 빼처먹으려고 눈깔을 까집고 지랄을 떨겠지요!”

“그럼요. 김주태가 어떤 놈인데 절대 손해 볼 일은 안 하지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가 쓴 돈의 수 배는 뜯어내겠지요. 그뿐이겠어요. 청풍관아와 결탁을 했으니 호랭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지요. 청풍관아 이름을 팔며 더 지독하게 뜯어낼 것입니다!”

“대행수, 결국 고을민들이 개미처럼 일해 모아놓은 모든 것을 몇 놈 아가리에 몽땅 처넣는 것이오. 종당에 죽어나는 건 고을민들 뿐이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어쨌든 지금이 청풍도가에 또 한번 타격을 줄 수 있는 기회이기는 한데…….”

최풍원은 청풍도가 김주태에게 또 한방을 먹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번 일로 청풍도가가 우리 북진도중을 눈에 가시처럼 보고 있는데 또 당하겠소이까?”

지난 청풍장날 고을민들을 모아 청풍도가를 성토하고 김주태로부터 고을민들의 빚장부책을 건네받아 불태워버린 일을 떠올리며 박한달이 몸조심을 하자며 하는 말이었다.

“어쨌든 청풍도가 역시 한양의 경상들로부터 많은 물건들을 받아 장사를 하고 있는데, 선세로 불만이 높은 지금 경상들을 우리 쪽으로 끌고 온다면 우리로서는 호기회인데 아직은 여러가지로 미비한 것이 많으니 참 안타깝소이다.”

“아무리 기회가 좋다 해도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어쩌겠소이까? 곧 또 기회가 오겠지요. 지금 청풍도가에 대한 고을민들의 불만도 여간이 아니라오!”

박한달이 최풍원의 다급한 마음을 달랬다.

지금 북진여각의 상태로는 청풍도가와 거래를 하는 모든 경강상인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청풍도가는 이미 몇 백 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오는 뿌리 깊은 청풍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게다가 청풍관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비호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인근 일백 리 안에서는 청풍장만큼 큰 장은 없었다. 그 까닭에 일백 리 안에서는 청풍장 하면 모르는 고을민이 없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