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은 청주서원도서관 사서]

다시 한 번,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이전의 나는 조금 더 젊었고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호기심으로 꿈틀댔다.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갈구했고 그것을 혼자서 떠나는 것을 즐겼다.

단박에 읽어 나갔던 이전과는 달리 이야기 하나를 읽고서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까지 더러는 쉼표가 필요했고 머릿속과 마음 속 공간의 일부를 내주어야만 했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위안 받는 것이 일투성이이지만, 결국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 곁으로 다가갈 용기를 얻는 것은 어쩌면 낯설고 힘든 일상에서 사람과 사랑이 공존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위안 받는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랑과 삶의 이야기가 담긴 이병률 산문집 ‘끌림’. 시인이자 라디오방송 구성작가였던 이병률이 50여 개국, 200여 도시를 돌며 남긴 순간순간의 기록이다. 여행자의 가슴에 남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을 보여준다. 저자는 뚜렷한 목적이나 계산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길 위에 머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미국, 모로코, 페루, 인도, 네팔 등을 여행하며 눈에 담은 풍경들을 감성적인 글과 사진으로 풀어냈다.

이 책은 travel note라고 쓰여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점점 나는 여행의 비예측성에서 오는 설렘보다 여행을 하는 그자체에 집중하게 됐다. 그때의 그는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느끼는 걸까. 차마 더 기술하지 못한 마음은 지금 어디로 향해있는 것일까

나에게 이전의 여행이란 새로운 어딘가에 발을 내딛으며 경험의 폭을 늘리고 그 곳의 문화를 알아내며 견문을 넓히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끌림은 대부분 여행 중에 만난 사람에 대한 끌림, 그리고 공간에 대한 끌림을 보여준다. 길 위의 인간에게 끌리고 그가 다닌 무수한 길의 풍경, 그 사람, 그 느낌에 매혹 당한다. 작가의 감정과 생각들은 오로지 작가의 것이고 그 순간에만 허락된 감정과 생각들일 수 있지만, 책 속 작가의 말들로 나 역시 그 장소들을 스쳐 지나고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 공감하고 소통하며 생각의 조각들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저 유명여행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세계 곳곳에서 구석구석에서의 만남과 이야기!

‘끌림’으로 그 곳에서 만난 어느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가슴 따뜻하게 공감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리고 내 지친 일상에서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되어줄, 지금껏 내가 느낀 여행이라는 의미와 다른 ‘여행’이라는 것에 대한 애틋함, 소중함 그리고 열망을 느껴본다.

어디에나 떠돌아다니는 사진이 아닌,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이야기가 아닌, 그곳에서 그가 아니었다면 겪을 수 없었던 이야기와 느낌은 부러움과 함께 그러한 것을 열망하기에 충분하다.

‘여행’은 나를 둘러싼 배경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미지의 장소와 사람들 속에 자신을 두어 내 안에 숨어있는 자아를 알게 되는 것이다. 곧 나를 발견하러 가는 발걸음, 그것이 여행일 것이다.

만약 지금 여행을 가는 길이거나 떠날 계획이라면, 이 책과 함께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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