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형님은 지가 뫼시고 가야 하는데…….”

도식이가 아쉬워했다.

“아니라네. 이제 자네도 동몽회 일일랑은 몽땅 잊고 새 일을 마련해줄 테니 그 일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만 전념하게!”

최풍원이 도식이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위로했다.

“이제껏 애들을 몰고 다니며 힘쓰는 일만 해온 지가 객주님들 하는 장사를 할 수 있을런가 걱정이 태산입니다요.”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나이 먹고 그런 일을 할텐가. 때가 되면 접을 줄도 알아야 할 게 아닌가. 이번에 다녀와서 자네가 원하는 대로 적당한 전 하나 마련해볼 테니 앞으로는 그걸로 업을 삼아보게!”

“형님 만난 게 지게는 천복입니다요. 형님 아니면 어디 장바닥을 떠돌며 아직도 장꾼들 등이나 처먹으며 살고 있거나, 무뢰배 짓하다 된 임자 만나 반신불수가 되어 떠돌거나 했을 터인데 형님 덕분에 사람 꼴 하며 살게 됐으니 형님이 지겐 하늘님이오!”

도식이가 한껏 머리를 조아렸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도식이는 최풍원이 하늘같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자신을 거둬들여 일을 주고 밥을 주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배곯는 사람에게는 밥이 하늘이었다. 추위에 벌벌 떠는 사람에게는 솜바지저고리가 하늘이었다. 백성들이 먹지 못해 배가 등창에 가 붙고, 입성이 부실해 한겨울에 홑적삼을 입고 개 떨 듯 떨어도 나랏님이나 관리나 돌보는 이가 없었다. 그건 양반이나 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놈들은 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을 도와주기는커녕 홑적삼마저 빼앗고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건천으로 내모는 놈들이 그놈들이었다. 도식이가 무뢰배들과 몰려다니며 갖은 욕을 얻어먹으며 장꾼들 등을 처먹으며 살 때 그것조차 빼앗아먹던 놈들이 그놈들이었다. 벼룩이 간을 내고 걸뱅이 바가치를 빼앗는 숭악한 놈들이 그놈들이었다. 그런 일을 당하며 살아왔던 도식이에게 최풍원은 하늘일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뭐 별것이겠는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뭐라도 건네 우선이라도 잊게 해주면 그게 힘겨운 사람들에게는 하늘이었다.   “동생은 그런 실없는 소리 접어치우고 여각이나 잘 보고 있게. 하늘이 노해 천둥 칠까 겁이 나네!”

최풍원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형님은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소간이나 잘 보고 오시라요!”

도식이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최풍원 일행이 북진을 떠나 영춘으로 가기위해 북진나루를 건넜다. 북진에서 영춘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길이 있었지만 일행이 북진나루를 건너 청풍을 지나가기로 한 것은 연론리에서 박한달 객주를 불러 함께 가기 위해서였다. 연론에서 박 객주와 합류하면 일행은 영춘까지 강가로 난 빈장길을 따라 올라갈 작정이었다. 강가 바위절벽 위로 나있는 빈장길이라 위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고 경치도 볼만 했기 때문이었다. 청풍인근 어디를 둘러보아도 어디 한곳 예사롭지 않은 풍광은 없었다. 오죽하면 청풍 경승지에 이름 각자가 없으면 선비도 아니라는 말을 할 정도로 팔도에 글줄이나 한다는 선비면 가는 곳마다 석자 이름이 바위에 즐비했다. 그렇게 경치가 빼어난 청풍에서도 그중 출중한 절경이 옥순봉을 지나 구담봉 앞으로 펼쳐진 산수 경치였다.

“강수야, 너는 이 길로 연론으로 가서 박한달 객주를 뫼시고 오너라. 그리고 내매나루에서 다시 만나자구나.”

최풍원이 평동나루 쯤에 다다르자 동몽회 대방 강수에게 일렀다.

“거기는 다른 아이들을 보내고, 대행수님은 제가 직접 모시고 가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강수가 최풍원의 말에 이의를 달았다. 북진을 떠날 때 도식이로부터 잠시도 대행수 곁을 비우지 말라는 당부가 떠올라서였다. 특히 청풍 언저리를 지날 때는 각별히 조심을 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지난 번 청풍장에서의 성토 문제로 청풍도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것이 분명해서였다. 청풍 읍내를 한참이나 지나오기는 했지만 평동은 청풍 관할 내이고 청풍도가가 진을 치고 있는 읍내에서 불과 두어 마장 거리였기에 만약 그들의 눈에 띄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강수야 걱정 말고 다녀오너라!”

최풍원이 강수를 안심시켰다.

“니들은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대행수님을 철저하게 모셔라!”

강수가 동몽회원들에게 단단히 일러두고는 평동에서 연론으로 가는 갈래길로 속하게 달려갔다. 강수가 연론리 쪽으로 사라지자 최풍원 일행들도 다시 만나기로 한 강 상류 내매나루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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