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청매일] 신록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계절이다. 5월 8일, 어버이날을 보내면서 그 옛날 아버지가 살아 계실제 가족 사랑의 무거운 짐을 생각하게 된다, 아득한 옛 이야기지만 그때 아버지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8남매 어린 자식들을 기르시고 가르치는 힘든 짐을 숙명으로 여기며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면 언제나 ‘건강이 제일이란다.’하시며 ‘오과(五過-過食, 過飮, 過慾, 過色, 過勞)’를 조심해야한다고 항상 당부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건강을 말씀 하셨지만 정작 아버지 자신의 건강은 뒤로하고 늘 가족의 건강부터 앞 세우시고. 챙기셨다. 자식들에게 그렇게 과로하지 말라 당부 하시던 아버지! 자신은 고된 농사일에 과로한 탓인지 불치의 병을 얻으셨다. 십이지장 궤양(암)으로 물 한 모금, 밥 한술 못 드시고 혈관 영양주사로 버티셨다. 효행과 자식 사랑을 몸소 행하시다 가신 빈 자리가 너무나 허무하고 슬펐다. 한 평생 인내와 자기 희생의 인생길이 묻어나는 무거운 짐이였기에 더욱 슬펐다.

농경시대 아버지가 지고 오신 짐에 비하면 내가 지금 지고 가는 짐은 너무나 가볍다. 지게로 저나르던 일을 경운기, 자동차로 대신하는 산업화 시대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등짐을 지던 그 무거운 짐이 존재하는 것같다. 남에게 빚을 지는 일도 그렇고, 건강을 지키는 일, 사랑과 이별, 자식과 부모사이 갈등 이 모두가 등짐 못지않은 마음의 짐이 아닐까. 아버지 시대의 짐은 땀 흘리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저출산 고령화로 핵가족시대가 되고보니 고독과 쓸쓸함을 이겨내야하는 마음의 고뇌(苦惱)가 더 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짐이 있었기에 나의 능력이 모자람을 알아 알맞게 살아야 했고, 세상을 바르게 보고 살아온 것 같다. 또 다른 사람의 짐도 얼마나 힘든지도, 이웃을 사랑할 줄도, 용서하는 마음과 겸손함도 깨닫게 된 것이 아닌가. 5형제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나를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신 태산같은 은혜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집을 작만하고 아들, 딸을 기르면서 어떻한 어려움이 있다 해도 아버지께 짐이 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아버지 시대의 땀 흘리던 짐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 마음의 무거운 삶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자식에게도 짐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다.

내 어린 자식인 4남매도 장성해 부모 형제가 살아온 것처럼 제 갈길을 제 힘으로 살아가니 대견하고 내가 지고 가는 짐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장성한 아들, 딸을 만나면 볼 때마다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이는 법이여” 또는 “돌다리도 두둘겨보고 건너야해여”, “과욕이 지나치면 탐욕이 되는 거여” 정직하게 살아야한다. 행여 잘못될까 늘 그렇게 당부를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면 “걱정하지마세요 다 알아서 잘 할게요”라고 한다 그래도 또 당부하고픈 것이 부모 마음인 것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마음도 그때 그런 마음이 였으리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지만 나도 지나친 과욕을 버린다면서도 자꾸 무거운 짐만 탓하는 것 같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가자,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 아닌가. 그래도 늘 짐을 지고 사는 우리 인생! 아버지의 가족사랑의 짐 마저 벗는 날이 오면 서산의 노을처럼 내 삶도 몰(沒)할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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