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북진 앞을 흐르는 강물은 푸르고 하늘은 쾌청하다. 눈 돌리는 사방이 녹음이요 만발한 꽃들이다. 강 건너 비봉산에도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눈 호사다. 시절이야 어찌됐든 철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북진여각이 도중회의의 결의를 통해 출범은 했지만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지금까지는 북진본방을 중심으로 각 객주들과 교류하며 뜨내기 행상들처럼 장사를 해왔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었다. 산지사방에 흩어져있던 이전 임방주들을 북진으로 불러들여 청풍도가처럼 구색을 갖춘 저잣거리를 만들 참이었다. 그러려면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 사는 집이고 장사하는 집이고 사람이 끼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는 법이라 장사도 하려면 엉덩이라도 붙이고 앉아있을 만한 공간이 필요했다. 북진에 장거리를 만들고 상전도 지어야 하고 가가도 지어야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자금이 필요했다. 돈만 앞장을 선다면 어려울 일은 그리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장석이 형, 그럭저럭 우리 둘이 장사를 한지도 꽤 됐네!”

최풍원이 북진여각 누마루에서 나루 쪽 강물을 바라보며 무심히 말했다.

“첨 대면 난 지금 너무 흡족 혀!”

장석이가 뿌듯해 했다.

“등골이 빠질 것처럼 곡식 섬을 지고 다니며 행상하던 그때를 대면 그렇지.”

최풍원도 지난날을 떠올리며 장석이 말에 동조했다.

그러나 최풍원에게는 일궈놓은 지금의 정도로는 조금도 만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최풍원의 포부는 장사를 해서 땅마지기나 장만하고 북진 정도나 거느리며 떵떵거리는 그런 시골 장사치가 아니었다. 머잖아 청풍도가를 합병하여 청풍관내의 상권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하고 인근 큰 고을과 장차는 한양 도성의 시전까지 진출할 꿈을 품고 있었다.

“강물이 많이 줄었지?”

최풍원이 푸른 강물 위로 점점이 떠가는 뗏목들을 보며 장석이에게 물었다.

“눈 녹은 물도 줄 때가 됐지.”

그러고 보니 조석이 다르게 강물이 줄어들었다. 비단 강물이 아니더라도 물가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떠내려가는 뗏목 바닥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불과 두 순 전만 해도 마을 앞을 흐르는 강물을 따라 뗏목들이 강을 덮을 정도로 빽빽하게 내려갔었다. 강이 얼어붙었던 겨우내 강 상류의 산판에서 작업을 해놓았던 목재들이 뗏목으로 엮어져 물고기 떼처럼 강 하류로 떠내려갔다. 강과 어우러진 그런 뗏목의 모습은 강이 생기고 마을이 생기고 난 후 매해 되풀이된 풍광이었다. 이제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강 위에 떠있는 뗏목 숫자만 보고도 철이 오고 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장석이 형, 서둘러 영춘 심봉수 객주를 보러가야겠구먼!”

강 따라 내려가는 뗏목을 구경하던 최풍원의 얼굴에 갑자기 다급함이 묻어났다.

“저 정도면 한 삭도 지나지 않아 뗏목을 띄울 수 없을 것 같구먼!”

장석이가 최풍원의 속내를 읽고 맞장구를 쳤다.

최풍원이 강물 위의 뗏목을 보며 다급해진 것은 북진장터에 상전을 만드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여느 살림집들처럼 공력을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더라도 상전 역시 집은 집이었다. 그러니 상전을 지으려면 나무가 필수였다. 나무를 구하려면 북진에서도 칠팔십 리는 떨어진 강 상류에 있었다. 거기에 강원도 일대 벌목장에서 겨우내 베어진 나무들이 모여드는 목재 집산지가 있었다. 그곳이 영춘 용진나루였다. 문제는 지금 이때를 놓치면 물이 불어나는 여름 장마철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이유는 무거운 목재를 옮기려면 유일한 방법이 물길뿐이었다. 영춘에서 북진까지 무거운 목재를 육로로 옮긴다는 것은 없는 손자 환갑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땔감이나 헛간 정도에 필요한 것이라면 어려울 일도 아니었지만, 상전을 십여 채나 지어야 하는 물량이었다. 그런 막대한 목재는 물길이 아니면 옮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눈 녹은 물이 줄어들어 갈수기가 되면 곳곳에 여울이 드러나 강물로도 뗏목을 옮길 수 없었다. 한시라도 바삐 목재를 구해놔야만 그 다음 일을 진척시킬 수 있었다.

“내일이라도 영춘으로 가봐야겠는데 빈손으로 올라갈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최풍원은 난감했다.

목재도 물건이었다. 남의 물건을 사려면 돈이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물건 값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지금 북진여각의 형편으로는 목재 값을 치룰 만한 현물이 마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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