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불긴 하지만, 들과 논에는 일 년 농사일로 분주하다. 흙이 녹고 생명의 기운 속에 냉이, 꽃다지,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봄, 비닐하우스에서 정성스럽게 자란 고추 모종이 긴 고랑으로 출가하는 계절이다.

지난주에는 고향으로 씨나락을 하러 갔다. 씨나락은 볍씨의 방언이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실한 놈을 골라 다음 해 씨앗으로 사용할 볍씨를 저장한다. 춥고 긴 겨울을 견뎌낸 볍씨를 모판에 심는 작업을 씨나락 내린다고 한다.

요즘이야 제품화된 모판과 흙을 이용해 씨나락을 하지만, 예전에는 더 복잡한 작업을 거쳤다. 우선 소금으로 농도를 맞춘 물에 볍씨를 담가 쭉정이를 골라냈다. 황토를 채로 쳐 고운 흙을 모으고 볍씨 위에 고루 펴주는 작업을 한다. 모판이 준비되면 논에 물을 대고 모판을 옮겨 비닐을 씌워주고 모가 자라도록 한다. 이제 모내기를 위한 사전 작업을 마친 셈이다.

젊은이가 없는 농촌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농사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거름을 내고 모종을 기르는 일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내 고향 웃덕디, 수몰로 모두 고향을 떠났고,  남은 이들이 서로 품앗이를 하며 농사를 짓는다. 대처로 떠난 자식들도 일가를 이뤘으니, 고향엔 노인만 남은 셈이다. 품앗이를 하려면 집집이 손이 맞아야 하니 일머리 없는 내게도 품이 돌아오는 것이다.

동네의 주된 수입원은 담배농사였다. 경운기가 등장하기 전, 모든 일은 소와 사람의 몫이었다. 담배 모종을 심고 순을 따고 건조하고 조리하고 수매까지 봄부터 늦가을까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쯤 담배 농사를 접었으니 오래전 일이다. 마을의 모든 집에서 담배 농사를 지었으니, 품앗이도 어려운 농사여서 자식들의 일손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자연스럽게 담배 농사가 동네에서 사라졌다.

오랜만에 동네 어르신들을 만났다. 뒷집 아저씨는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옆집 아주머니는 허리가 학처럼 굽었다. 수술 후 염증이 재발해 병원에 누워있는 우리 엄마도 그렇지만, 한쪽 다리 절룩이며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텅 빈 고향 풍경 같다.

늦가을 씨나락은 가장 신비하고 신성한 광에서 겨울을 난다. 광에는 씨나락을 보호하는 귀신이 살고 있어 쥐와 각종 균으로부터 볍씨를 지켜주었다. 한낮에도 광은 어두웠고 습한 냄새가 났다. 밤에는 밥 짓는 소리도 들리고 글 읽는 소리도 들렸다. 꼼짝없이 이불에 오줌을 지린 날은 광에서 고소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처마에 매달린 쓸개로 모든 병을 고치던 시절, 자유롭게 광에 드나들던 젊은 엄마는 지금 병상에 누워있다. 씨나락을 키우던 귀신도 광도 사라졌고 나를 키운 젊은 엄마도 늙었다. 무논의 여린 모가 황금들판을 이루도록 늙어가는 노인들의 고향. 대처로 나온 나는 계절의 흐름도 잊고 자연의 질서도 모르고 살아간다.

머지않아 모가 자랄 것이다. 집집이 일정을 잡고 온 동네 사람들 모여 모내기를 할 것이다. 노인들은 못줄을 잡고 어린아이들을 모를 나르고 청년들은 무논에 발을 묻고 모를 심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절, 풍경이 복사꽃잎처럼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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