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새옷을 한 벌 짜악 빼입고 신행을 가는데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거유. 각시를 만나러 가는 것보다 새옷을 입은 게 더 좋은 거유. 그래서 옷이 장 중하구나 하고 생각했지유.”

“명주자루에 개똥이라더니 니 놈이 그 짝이구만! 장가가는 놈이 색시가 중하지 그깟 껍데기가 중하더냐?”

“그렇게 좋았다는 거겠지, 증말로 그랬다는 거겠냐?”

“아니유. 증말 그랬구먼유!”

“정신 빠진 놈!”

“피륙장사를 하면 지 맘대로 옷은 실컷 해 입을 것 아니유?”

“지 옷 해입을라고 피륙전을 하냐?”

“그렇다는 얘기유. 그렇게 옷이 좋으니 피륙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거유!”

“좋다고 다 장사 하냐? 장사가 돈을 벌어야지!”

장순갑이 길길성의 말을 막고 나섰다.

“장 객주는 왜 피륙전을 하려는 거요?”

“내가 지금가지 주막에서부터 행상을 거쳐 임방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지 않슈? 그런데 가장 눈먼 장사가 드팀전이더라 이 말이여. 그리고 썩는 물건이 아니니 안 팔린다 해서 속 썩을 일도 없어. 싼 물건 사다 몇 배를 불려 눈탱이를 때려도 하 종류도 가지가지, 질도 가지가지니 뭐라 하는 장꾼도 없고 재고가 나도 상해서 버릴 물건이 아니니 손해 볼 일도 없으니 이보다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여.”

 장순갑이 욕심이 많아 돌아가며 사람들에게 욕은 먹어도 제 속셈은 환하게 내보이니 객주들 입장에서는 그리 경계할 상대는 아니었다.

“장 객주는 맨날 사람들 속여 돈 벌 생각만 하시오?”

“장사가 속이지 않고 뭘루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단 말이냐?”

“장 객주 사람 속이는 게 거까지 소문이 났단 말인가?”

장순갑을 질책하는 조산촌 차익수 객주의 말을 듣고 박한달이 비꼬듯 말했다.

“어디 조산촌 뿐이겠소이까? 장 객주 장삿속은 우리 영월까지도 떠르르 하다우!”

성두봉이 한 술 더 떠 빈정거렸다.

“나 그래도 우리 마을사람들한테 폭리는 취하지 않았다!”

장순갑이 변명을 했다.

“한 고향사람들한테까지 그러면 그게 인간이냐?”

김상만이 그것도 말이라고 하느냐며 장순갑을 몰아세웠다.

“지 애비 에미도 속여먹는 게 장사꾼이라는데 고향사람들 속이는 게 무슨 대수겠냐? 그래도 난 우리 마을사람들한테는 잘하려고 했다.”

“그래서 북진사람들한테 그리 잘했냐?”

“내가 우리 마을사람들한테 뭘 어쨌다고 그러는 것이냐?”

“천지가 환하게 아는 것을 네 놈만 모른 척 하냐? 네 놈이 모른 척 한다고 네 놈이 한 짓거리를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냐? 가증스러운 놈!”

“내가 뭘 어쨌다고 네 놈은 나만 보면 못 잡아 먹어 지랄이냐?”

장순갑이 뿔따구를 내며 박한달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니 놈이 한 못된 짓거리는 저기 갱분에 잔돌보다도 많아 얘기하기도 숨찬다 이놈아!”

“장사를 해먹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숱하다지만 니놈 얘기처럼 내가 뭘 그렇게 못된 짓거리를 그래 했단 말이냐? 내가 행상을 다니며 남의 마을에 가서는 그리 했는지 몰라도 여기서는 그런 일 없다!”

장순갑의 말투나 표정을 봐서는 순전히 박한달의 오해처럼 보였다.

“야, 이누무 새끼야! 지난번 최풍원 대행수가 청풍 사람들에게 쌀을 풀어주고 봄이 되면 원전 값으로 마을에서 나는 봄 산물로 받으라고 했는데, 네 놈 어찌 했느냐. 원전에 이자까지 받고 있는 것을 모르는 줄 아느냐? 그게 마을사람들에게 잘한 일이더냐? 니 놈 물건도 아니고 북진본방에서 나눠주라고 한 쌀에도 이자를 붙인 놈이 이제껏 무슨 짓거리는 못했겠냐? 주둥이가 있으면 얘기를 해보거라!”

“그거는…….”

박한달이 몰아세우자 장순갑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네 놈한테 북진장 피륙전을 맡겼다가는 다 잘라 처먹어서 어른 피륙을 사서 코흘리개 옷도 짓지 못할 게다!”

“맞어! 겨울 솜저고리 질려고 샀는데 올 다 빼먹고 적삼도 짓지 못할 거구먼.”

“에라, 이놈아! 차라리 애 볼태기에 붙은 밥알을 떼 처먹지 굶는 사람 주라는 양식까지 해처먹냐?”

객주들이 돌아가며 욕지거리를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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