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채널 김광만 PD, 1910년 러시아 경찰 기밀문서 입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인근…해외 독립운동 근거지

 

[충청매일 제휴/뉴시스] 국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1870~1917) 선생의 러시아 연해주 거주지를 찾았다.

22일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제작사 ‘더채널'의 김광만 PD가 러시아 국립극동문서보관소에 보관한 1910년 러시아 경찰의 기밀문서를 입수해 성명회(聲明會) 선언서를 작성한 이상설 선생의 거주지를 확인했다.

이 기밀문서에는 ‘00에는 대한제국 신민 이상설이 살고 있다. 이 한인들(이상설·홍범도·류인석·김학만 등) 모두는 이범윤의 의지를 실제로 집행하는 자들과 항일조직을 결성하는 데 있어 그의 조언자들이다'고 적었다.

블라디보스토크시 신한촌 인근에 벽돌과 목재로 지은 2층 건물이 이상설 선생 등이 성명회 선언의 서명을 모으고 발송했던 곳이다.

성명회 선언에는 연해주에 살던 한인 8천624명이 서명했다.

김 PD는 “연해주 한인 8천642명이 성명회 선언에 서명한 것은 교통과 통신 등이 원활하지 않았던 당시 대단한 참여"라며 높이 평가했다.

한 연구 논문 자료에 따르면 1910년 연해주에는 한인이 5만4천여명 거주했다. 6명 중 1명이 서명한 것이어서 한인들의 독립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성명회는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일본에 공식으로 넘어간 경술국치일을 엿새 앞둔 23일 이상설·류인석·이범윤 등을 중심으로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다.

이들은 전날 한일병합 조약 조인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한인학교에 모여 모든 한인이 국권회복에 나서기로 하고 성명회를 조직했다.

성명회는 한인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러시아 당국의 탄압으로 그해 9월 거주지 압수수색을 당하고 해체됐다.

다른 문건에서는 이상설 선생이 브라우닝식 연발권총을 가지고 있었음도 확인했다.

이상설 선생은 압수된 이 권총을 돌려달라는 청원도 했다.

한편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는 22일 선생의 생가가 있는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충렬사에서 선생 순국 102주기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고 이준·이위종 선생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다.

일제의 방해로 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호소문을 발표해 한국의 자주독립을 외쳤다.

이후 러시아와 만주 국경지방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건강이 악화해 연해주 니콜리스크(우스리스크)에서 향년 48세로 순국했다. 우스리스크에는 2001년 10월 건립한 유허비가 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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