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아내가 하나를 안고, 또 하나는 업고 거실을 서성인다. 태어난 지 채 백일이 되지 않은 어린 손주를 잠시 업어 주는 사이 이제 얼마 있으면 한 돌을 맞이하는 다른 손주의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하나를 업은 채 다른 하나는 안고 있게 된 것이다. 업은 손주는 둘째 딸이 낳은 아들이고, 안은 손주는 큰딸이 낳은 손녀다. 둘째 딸이 친정에 다니러 왔기에 잠시 손자를 안아주는데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손녀가 할머니의 사랑을 뺏기지 않으려는 듯 울음보를 터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두 아이를 안고 업고 허둥대는 것이다. 안쓰러운 생각에 거들어 볼 양으로 두 손을 내밀었지만 손주 모두 나에게는 오려 하지 않는다. 아이를 업고 구부정한 채로 또 다른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여간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다.

변명이지만 필자도 가끔은 손주들과 놀아 줄 때가 있기는 하다. 녀석들이 제 어미 젖을 잘 먹고 난 뒤 기분이 좋을 때는 필자에게도 안기고 재롱도 부리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할머니의 사랑을 두고 전쟁을 벌이기라도 할 때면 필자는 별로 소용이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어쨌든 필자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결혼하고 우리 부부는 3남매를 키웠다. 딸과 아들을 낳아 행복했고 그만큼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특히 아내의 3남매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유별났다. 아내의 정성으로 우리 애들은 별다른 속을 썩이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장성한 3 남매에게 손녀 손자를 보았다. 아마 앞으로도 얼마간 더 늘 것이다.

손주를 거느린 아내는 자식들을 키울 때와 똑같이 손주들에게도 정성을 쏟는다. 업어 주고, 안아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고…. 자식을 키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랑이 익애에 가까울 만큼 무조건적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투정을 부려도 대부분 다 받아주고, 거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다. 자식들이 가끔 제 아이들이 버릇 나빠질까 봐 걱정을 할라 쳐도 아내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저 손주 사랑에 듬뿍 빠져있기만 하다. 나 역시 손주들의 재롱에 시간 가는지 모르지만 아내에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아흔이 훨씬 넘으신 필자의 어머니 역시 며느리의 자손들에 대한 사랑과 정성에 탄복해 하신다. 어머니의 눈에도 아내의 자손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대단하다고 느껴지셨던 모양이다. 필자는 가끔 아이들은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돼 온 천지를 황홀하게 하는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벚꽃과 이제 5월이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장미며 이팝나무 등의 많은 꽃들의 아름답고 고운 모습이 아이들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어쩌면 꽃보다도 더 이쁘고 한없이 귀한 존재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들의 커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쩌면 생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5월이다. 5월에는 유난히 가족에 관련된 기념일이 많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에, 부부의 날이 이어서 있다. 그래서 가정의 달이기도 한 5월에 어린 손주를 키우며 온갖 고생을 다 하는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할머니들에게 건강과 웃음의 축복이 깃드시길 기원한다.

당연히 꽃보다 예쁘고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의 모든 아이들에게도 건강과 행복이 풍성하게 깃들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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