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채마전은 어느 객주가 해보시겠소?”

싸전이 결정되자 이번에는 최풍원이 채마전을 운영할 객주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채마전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나가면 맨 풀인데, 이런 촌구석에서 누가 그런 푸성귀를 사먹는단 말이오.”

“아낙네들이 광주리에 이고 다니며 팔아도 충분할 것을 뭣 때문에 그깟 것을 팔겠다고 상전까지 만들겠다는 거유?”

“거시기 두 쪽 달고 누가 그런 채마전을 한단 말이오? 사내구실도 못 할라면 뭔 짓은 못 한디야?”

“거시기 떼고 해야지!”

객주들이 채마전 이야기에 서로들 쳐다보며 낄낄거렸다.

“여러 객주들께서는 대장부가 푸성귀나 판다고 비웃지만 그렇게 비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남들에게는 하잘 것 없이 보이는 장사가 더 실속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장사든 제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내 물건을 팔아주는 장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든지 장사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풍원이 예전 청풍장에서 자신이 했던 채소 장사를 떠올리며 객주들을 설득했다.

“대행수,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이 기분에 사는 것도 무조건 무시할 일은 아니네. 매일처럼 하는 일인데 당사자가 우선 즐거워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청풍읍내처럼 관아나 상전이나 주막이 많은 곳은 채마만 팔아도 밥은 먹고 살겠지만 북진은 아직 무리라는 생각이 드네. 집에서 먹을 채소는 각각 농사 지어서 자급자족을 하고 있는데 채마전만으로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채마전과 모전을 합치는 것이 어떻겠소?”

“둘러치나 메치나 일세. 채소는 그렇다손 치고 두 가지를 합친다한들 과일인들 얼마나 소비가 되겠는가? 그리고 두 가지 다 제 때 나는 생물이고 대문 밖만 나서면 집마다 과실나무인데 누가 장터가지 와 그걸 사겠는가. 그러니 채마와 모전도 합치지만 우리 고장 특산물인 고추나 마늘 종류도 한데 뭉치는 게 어떻겠소이까? 고추나 마늘 같은 것은 사람들이 일 년 내내 먹는 가용살림인데다 보관도 어렵지 않으니 북진 뿐 아니라 다른 큰 고을로도 팔 수 있지 않겠소이까?”

조산촌에서 온 차익수 객주가 김상만의 말에 살을 보탰다.

“참으로 좋은 의견이외다. 많은 물건은 여각에서 직접 취급을 하고 장마다 개개인이 가지고 나오는 물건은 채마전에서 수집을 해놓았다가 여각으로 보내면 여각에서 한데 모아 경상들에게 넘기면 될 것 같소이다.”

김상만이 채마전에 여러 물산들을 한데 모으자는 의견에 찬동했다.

“그러면 채마전이 아니라 상전 이름도 바꿔야 하지 않겠소? 상전이라는 것이 이름을 보고 무슨 물건을 파는지 아는 것 아니우?”

“한양에는 가니 채마전, 마늘전, 고추전 들이 각각 나눠져 있던데 우리는 그걸 모두 합쳐야 하니 뭐라 상전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소이까?”

참으로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일 년 내내 먹는 갖가지 푸성귀들이야 그저 채마전으로 뭉텅그려 불러도 무방하지만, 마늘과 고추는 달랐다. 마늘과 고추는 조선 사람들에게 음식 이상으로 특별한 것이었다. 하루도 먹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 식생활에 밀접하게 붙어있는 것이 마늘과 고추였다. 워낙에 둘은 서로가 강한 독립체로 존재감이 강했다. 둘을 합치는 것은 서로 다른 성씨를 합치는 것만큼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채소처럼 여러 가지를 한데 뭉쳐 부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상전의 명칭을 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 이름이 있어 부르는 소리만 듣고도 떠올리는 것처럼 상전의 명칭만 듣고도 사람들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니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 모이신 객주님들 좋은 이름이 없겠습니까?”

최풍원이 임방 객주와 상전 객주 모두에게 의견을 구했다. 

“아까 대행수도 말했지만 물량이 많은 물산은 여각에서 직접 거래하고 장꾼들과 소소하게 거래되는 물건들을 취급할 상전이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맙시다요. 어떤 이름이고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자꾸 부르다보면 익숙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요?”

“나물이고 마늘이고 고추고 모두 채마밭에서 나는 것들이니 내 생각에는 채마전이라 해도 무방하겠단 생각이오. 그리고 채마전에서 마늘과 고추도 취급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리로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여러 객주들의 이야기를 요목조목 듣고 있던 복석근이 이제껏 불러오던 이름 그대로 채마전으로 하자고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