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활터에서는 사법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오랜 세월 전해온 운동이기 때문에 감히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활을 쏜 사람들 앞에서 자칫하면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되기 쉽습니다. 활터에는 집궁회갑이라는 게 있습니다. 활을 쏜 지 60년이 되는 해에 활 쏜 60주년 기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갑’이라는 말이 붙은 것입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활을 이렇게 쏴야 하느니 저렇게 쏴야 하느니 하고 함부로 까불다가는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죠. 그래서 다들 사법에 대해서는 쉬쉬 하고 말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사법 부분에 대해서는 전체의 줄기만 ‘온깍지 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했을 뿐, 원리에 대해서는 함구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집궁한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애송이들이 사법에 대해서 인터넷에 떠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관행이 몇 년 지속되자 활터까지 영향을 미쳐서 젊은 것들이 노인들을 가르치려 드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결국 ‘새파란’ 제가 사법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무척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성낙인 옹 때문입니다.(성낙인은 조선궁술연구회장 성문영 공의 외동아들로 1941년에 집궁하여 2001년에 집궁회갑을 맞음.) 1996년 겨울에 처음 성 옹을 뵙고는 활 공부에 큰 진척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조선의 궁술’을 읽으면서 저의 공부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집궁으로 치면 25년이 흘렀지요. 이 세월은 활터에서 그리 오랜 것이 아니지만, 전통의 정통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저를 벼랑 끝에 몰아붙인 세월이라면 이제 전통도 누군가는 가닥을 드러내어 전통 사법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해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활쏘기의 지름길’입니다. 이 책은 거두절미 하고 사법에 관한 글로만 엮었습니다. 사법이 아닌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통해서 정리하고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궁술’은 인류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완벽한 활쏘기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활쏘기는 ‘조선의 궁술’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의 궁술’ 속 사법 서술은 몇 쪽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전통 사법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착각하고 제 멋대로 해석하여 새로운 사법을 창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엉터리 사법에다가 ‘전통’이라는 말을 버젓이 붙입니다. 간략한 것과 불완전한 것은 다릅니다. ‘조선의 궁술’은 서술이 간략한 것이지 불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동안 ‘조선의 궁술’을 공부하며 느낀 점과 몸으로 확인한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방법을 썼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다른 자리에서 간간이 설명한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새롭게 설명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이론도 ‘조선의 궁술’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베일에 싸인 ‘조선의 궁술’의 비밀을 열기 위하여 제가 그 동안 고민해온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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