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황칠규와 금만춘이 북진여각의 도중회 회원이 되겠다며 나섰지만, 다른 임방 객주들은 여전히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대행수, 모두가 모여 있는 자리니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소이까. 임방 객주들에게는 좀 더 결정할 시간을 주고 상전 객주들 문제도 이 자리에서 확정을 지어야하지 않겠소이까?”

김상만이 임방 객주들이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상전 객주들이 북진장에서 맡아 장사할 물목부터 정하자고 제의했다.

“그럼 상전 객주들 물목부터 정합시다!”

최풍원도 그게 좋겠다며 김상만의 뜻에 따랐다.

“지난번 대행수께서 생각해둔 대로 정하면 어떨까 합니다만…….”

박한달이 다른 상전 객주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의향을 물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본 것이고, 오늘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정하십시다! 물목마다 편차가 있을 터이니 먼저 객주님들 각자의 의향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최풍원은 물목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최풍원이 북진에 본방을 두고 장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객주들은 자신들의 마을에서 나는 모든 산물들을 취급해왔다. 객주들이 똑같은 물산들을 함께 거래해왔어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서로 일정한 거리가 떨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각 객주들이 북진장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모여 장사하기 때문에 거래하는 물산이 겹치면 서로 간에 충돌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물산이 겹치는 것도 분란의 소지가 있었지만 어떤 물목을 누가 할 것인 가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었다. 그고 그럴 것이 어떤 물목을 잡느냐에 따라 수입의 규모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장사꾼에게 무엇보다도 중한 것은 이득이었다. 누구든 판로가 좋아 한 푼이라도 더 남는 물목을 자신이 차지하고 싶을 것은 당연했다.

“상전 객주들은 의견들을 내보시오!”

김상만이 재촉했다.

“우선 북진장에 어떤 전을 만들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알려 주시구려.”

장순갑이 새로 만들려는 북진장터에 어떤 상전을 꾸미려하는지 그 종류부터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것은 거기서 거기니 북진장 역시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 않겠소이까? 그렇지만 여기는 여기대로 특성이 있으니 우리는 우리 사정에 맞게 만들어야하지 않겠소이까?”

“그야 당연하겠지유. 연론은 담배가 잘 되고, 교리는 고추가 잘 되고, 학현은 버섯이 많이 나고, 광아리는 조와 콩·보리 같은 잡곡이 잘 되는 것은 그곳 땅과 연때가 맞으니 그런 것 아니겠슈. 농사나 장사나 모두 연때가 맞아야 동티나지 않고 잘 될 게 아니겠슈?”

최풍원의 말에 김상만이 청풍 인근의 각 마을에서 많이 나는 산물과 빗대어 동조했다.

“농사는 농사고 장사는 장사지, 농사하고 장사하고 어떻게 같냐? 생각하는 게 그리 등신 같으니 백날 장사해도 그 장단인 겨!”

장순갑이 김길성이 하는 말투가 못마땅해 죽겠다는 듯 핀잔을 주었다.

“장 객주, 나는 장사도 연대가 맞아야 잘 된다는 뜻으로 하는 말인데 뭘 그걸 갖고 잡아먹을 득 그리 타박을 하는가?”

핀잔을 얻어먹고도 사람 좋은 김길성은 그저 허허거리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장사나 농사나 다를 게 뭐 있더냐? 땅이고 장사꾼이고 정성을 다해 본심으로 대하면 언젠가는 그 마음이 닿는 날이 있겠지. 너처럼 눈깔이 빨개져서 남을 속여먹으려는 눔은 우선이야 돈을 벌겠지만 종당에는 사람들도 그걸 알아채겠지. 사람은 끝을 보아야지, 지금 좀 좋다고 그게 다가 아녀!”

김길성의 대응이 답답했던지 김상만이 대신 장순갑을 몰아 세웠다.

“니 놈은 나랑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길래 사사건건 내 일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냐?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장순갑이 발끈하며 대거리를 했다.

“니 눔이 하는 짓거리를 몰라서 그리 묻는 것이냐,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냐? 청풍 인근에서 네 놈과 한 번이라도 거래를 했던 장꾼들은 네 놈이 얼마나 얌체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눔아 네 눔이 그걸 모른다면 니 놈이 등신이다, 이 등신 같은 눔아!”

장순갑의 대거리에 김상만이 대차게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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