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무슨 복안을 말하는 것이오?”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시오. 북진여각에서 각 임방에 종자 물건을 무상으로 대준다 하니 지금까지 거래해오던 장사꾼들과의 관계를 끊어도 무방하겠지만 여러 객주들이 믿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복안을 말해부지 않으니 불안하지 않겠소이까. 북진여각과 새로이 장사를 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물건을 조달할 거요?”

“일단 여러 임방에 공급할 물건은 충주 윤 객주 상전을 통해 공급할 것이오. 그 정도 물량은 충분히 대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충주에서 대줄 수 없는 물건들은 한양의 경상들과 거래를 통해 조달해 줄 것이오. 그리고 각 임방에 대주는 물건에 대한 선수금은 없소이다. 일단 물건부터 대줄테니 장사를 하고 난 이후 여각과 계산을 하면 될 것이오. 대신 각 임방주들이 물건을 팔고 거둬들인 물산들은 일체 여각으로 넘겨줘야 하오. 그 약속만 지킬 수 있다면 우리 여각의 일원이 되는데 다른 조건은 없소이다.”

“지금까지 각자 하던 장사꾼들 물건을 북진여각으로 모두 가져와야 하는 연유가 뭐요. 혹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니오이까?”

“송 객주는 자꾸 의심만 하지 말고 좋게 생각을 좀 해보시오. 내게 꿍꿍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든 북진에서 장사를 일으켜 북진을 청풍 중심지로 만들고 큰 장사꾼이 되려는 것이오. 그렇지만 내가 비록 거상이 된다 하더라도 내 혼자 잘 먹고 잘 살려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여러 객주들과 함께 잘 사는 길을 도모하는 것이오. 거상은 여러 객주들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래서 여러분들과 힘을 모으려는 것이오.”

“패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장사꾼들이 각자 지 장사나 하면 되지 힘은 모아 어쩌겠다는 것이오?”

“그건 그렇지 않소. 이젠 장사도 이전 장사가 아니오. 장사도 이젠 바뀌고 있소이다. 이전처럼 제 물건만 파는 빠꼼이 장사로는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오. 바깥세상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청풍 고샅에서 옛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게 될지도 모르오, 밖에서는 거상들조차 상계를 모아 자기들 이득을 챙기려 혈안이 되어있는데 검불만도 못한 우리 같은 장사꾼들이 제각각 활동을 한다면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잡아먹히고 말 것이오. 그래서 우리도 한데 뭉쳐보자는 거요. 그리고 함께 장사를 해보자는 것이오. 일테면 물건도 같이 떼면 각자 경상들이나 도가에서 떼는 것보다 싸게 받을 수 있고, 물건을 넘기는 것도 각자 넘기는 것보다 한데 모아두었다가 흥정을 하면 유리하고, 턱없는 금으로 팔라고 하면 여각 창고에 쟁여두었다가 금이 좋을 때 내놓으면 곱절로 이득이 생길게 아니요? 거기에서 생겨나는 이득도 여러 객주님들의 거래량을 고려하여 공평하게 분배를 할 것이오.”

“물건은 거저 대주고, 각자 물건을 떼려니 경상이나 도가 횡포로 비싸게 떼던 물건을 한꺼번에 떼서 싸지니 그 이익금을 먹고, 물건과 맞바꾼 물산들 어디 쌓아놓을 데가 없어 값을 후려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넘기던 물건을 여각에서 보관해두었다가 비싸게 팔아 남은 이득금까지 우리에게 챙겨준다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이래 먹고 저래 먹고 금방 부자 되겄네!”

“부자만 되겠냐? 땅 사고 소작 놓아 떵떵거리며 살수도 있겄네!”

북진여각에 모인 객주들이 최풍원의 복안을 듣고 모두들 희망에 부풀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오! 북진여각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장사를 할꺼 외다!”

“그렇게 좋은 조건이었는데, 그 말고도 또 있단 말이오?”

“그렇소.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장사 방법은 떠날 때부터 무거운 짐을 지고 시작하여 돌아올 때까지 무거운 등짐을 지고 와야 했소.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소!”

“그게 무슨 말이우? 등짐장수가 짐을 등에 달고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짐을 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신주 없는 사당이나 매한가지지, 등짐장수가 짐이 없다니.”

“과거 보러가는 선비가 지필묵 없이 가는 것 한가지네.”

“그러게 말여.”

북진여각에 모인 객주들은 최풍원의 이야기에 모두들 반신반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를 하는 행상들에게 등짐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등짐을 지지 않아도 된다니 종 신세를 벗어난 만큼이나 홀가분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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