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수렛길이 끝날 무렵에 성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분묘 한 기가 있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보니 이 부분은 흙으로 쌓은 외성임이 분명하다.

성의 내부로 들어가는 어귀에 분묘가 있다. 허름하기는 하지만 꽤 넓게 자리를 잡았고 북향이다. 남이면 비룡리 쪽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비석만 있고 상돌은 없어 살펴보니 상돌이 옆으로 비켜나 있다. 비석도 훼손된 흔적이 뚜렷하다. 전면에서 효자 열녀의 묘라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성씨를 누가 지워버렸다. 이면에서 성씨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분묘 주변이 중장비에 의해서 파헤쳐졌다. 정상까지 10m쯤 되는데 이곳도 중장비가 파헤쳤다.

정상에 너른 공터에는 지휘소 같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곳 건물지에도 누군가 분묘를 만들어 다 차지해버렸다. 주변에 나무를 심어 조경까지 했다. 본인은 조경으로 생각하고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문화재를 훼손한 것이다. 성안에 우물터가 있었을 텐데 찾을 수가 없었다. 분묘를 만드는 과정에서 훼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분묘를 조성하거나 사초를 하려고 중장비가 드나들었을 것이다. 내성 둘레가 130m이므로 커다란 분묘 한 기를 만들고 조경하기 딱 좋은 넓이이다. 주변을 다듬고 단풍나무를 심은 것이 바로 엊그제인 듯 흔적이 뚜렷하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쪽 성벽도 토성이 분명하다, 아마도 기초 부분은 돌로 쌓고 내부와 상단부는 흙으로 쌓은 것 같다. 성 내부 중앙은 토축 보루처럼 보였다. 토축 보루 위에 후세 사람들이 분묘를 만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조상님을 보루를 지키는 영원한 성지기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졌지만 겨울에는 여기서 부강면 일대가 다 눈에 들어 올 것 같다.

내려오다가 중장비가 파헤친 부분을 살펴보니 기와조각 몇 개가 눈에 띤다. 백제시대나 통일 신라 이후에 건물이 있었을 것이다. 표지석에는 백제시대 토기편도 발견된다고 했다. 찾지는 못했다. 이 성은 백제 시대에 축성되어 후에도 계속 사용했다고 한다. 이 산줄기에 있는 성재산성, 복두산성, 독안산성, 유모산성과 부강 소재지 건너의 노고산성, 애기바위성, 화봉산성이 서로 마주보면서 부강 소재지와 금강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북으로 은적산성이 2~3㎞, 팔봉산이 바로 얼마 되지 않는다. 서쪽으로 세종시 원수봉산성 합강리 주변의 산성들과 연결된다. 결국 운주산성에서 시작되는 연기지역의 산성들과 공주의 공산성이 연결되는 중간 위치가 아닌가 한다. 또 이곳에서 노고산성 줄기와 함께 금강에서 부강을 통하여 청주나 문의 보은으로 향하는 모든 인마의 움직임을 관찰 관리하였을 것이다.

성재산성 쪽은 철조망을 쳐놓고 민간 출입을 금지하였다. 여건상 갈 수 없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비룡리 쪽에 골프장이 보인다. 골프장이 한 골짜기를 다 차지하고 성채처럼 들어 앉아 있다. 저기 살던 농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 산에 묻혔던 분묘의 자손들은 조상의 산소를 다 어디로 모셨을까 궁금했다. 주변에서 문화재는 또 얼마나 잃어버렸을까. 급변하는 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복두산성은 아직도 백제의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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