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야호~~호야! 호야!”

들려오는 소리가 생각에 잠긴 나를 깨웠다. 앞선 등산객이 뒤처진 동료를 부르고 있었다.

“야호! 야호!”

한동안 서로 주고받는 신호가 귀에 메아리쳤다.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나를 만나면 “야호!” 하고 반기던 야호 아주머니. 생각이 어스름한 새벽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녀가 처음 눈에 들어온 건 특이한 등산복 때문이었다. 머리엔 꽃무늬 스카프를 질끈 동여매고 쫄쫄이 티셔츠에 헐렁한 몸빼 바지, 가벼운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바로 70년대 엄마표 패션이었다. 엄청 용감한 분이거나 정상이 아닐 거라는 느낌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더 이상한 건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온다는 거였다. 아니 어느결에 빨아서 휘리릭 말려 입고 오는 걸까? 그 차림은 여름 내내 그리고 초가을까지 계속되었다. 찬바람 불어야 파카를 입고 나타나는데 그 모양새 또한 눈에 띄었다. 윗옷의 앞뒤를 바꾸어 등판이 앞으로 오게 돌려 입곤 했다. 허나 자꾸 보니 익숙해졌다. 생경했던 차림새는 어느새 그녀 고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녀가 유명브랜드 등산화를 신고 나타났을 땐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산행하며 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을 하는 듯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듯도 했다. 워낙 큰 목청이라 멀리서도 똑똑히 잘 들렸다. 낯익은 사람이 보이면 “야호!”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날 그녀와 단둘이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녀는 첫 일성으로 “참 얌전한 사람이네!” 라며 말을 붙여왔다. 내 얼굴에서 수심을 읽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녀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입에 올렸다. 자연스레 그녀와 나는 노인 요양 문제를 화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도 와병 중이었다. 남편이 병석에 눕자 그녀는 매일 새벽에 집을 나섰다. 본인이 건강해야 병간호를 잘할 수 있다며 열심이었다. 남편의 아침 수발 시간에 맞추어야 했기에 발걸음이 빨랐다. 사람들과의 소통도 주로 산에서 이루어졌다. 그녀의 세상은 산에 있었다. 그날 그녀와 나는 마치 오랜 동지를 만난 듯했다. 집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남편은 전에 없이 얼굴이 왜 그렇게 환해졌냐며 의아해했다.

한동안 나는 새벽 산행을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서야 다시 산을 찾았다. 나를 보자 그녀가 반색했다. 일행들과 하던 말을 멈추고 “야호!” 하며 반겨주었다.

한번은 멀리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들렸다.

“글쎄 저이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대. 요즘 보기 드문 효부야!”

눈물이 글썽해졌다. 아직도 내가 시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그녀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와 이야기하는 걸 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오경 동네 로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를 만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헌데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왜 며칠 안 보이셨어요?”

“영감이 갔어.”

무표정한 말투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이렇게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어. 어디에도 마음 둘 데가 없네.”

씩씩했던 그녀가 눈물이 글썽한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손을 잡고 밥이라도 먹자고 했다. 하지만 휘휘 손을 내저었다.

“어여 가던 길 가.”

“어디로 가시는데요.”

“그냥……”

끝내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산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눈에 띄게 발걸음이 느려졌다. 걷다가 자주 쉬었다. 그 후 언제부턴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늘 동행하던 분께 여쭈어보니 그녀가 암 선고를 받았단다.

“많이 아픈 모양이야. 수술도 못 받는다던데. 아들이 모셔갔다더니 연락이 없네. 아휴 죽었나?”

그분도 안부를 전하며 눈물지었다. 마음이 먹먹했다.

그날 나는 딱히 갈 일도 없는데 예의 로터리를 걷고 있었다. 까닭 없이 가슴 속에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유난히 일찍 찾아온 가을날이었다. 서성이던 내 앞에 느닷없이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깜짝 놀랐다. 검어진 얼굴에 눈물이 어룽거리는 눈매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편찮다더니 괜찮아지신 거예요?”

나는 그녀를 얼싸안았다.

“좋아 보이는데 어떠셔요?”

“아니야, 내가 아는데 얼마 안 남았어.”

죽음을 앞둔 사람이 그리 담담할 수 있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산사람들이 모두 아주머니 안부를 궁금해하고 있어요.”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었다.

“오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나오신 거예요?”

“움직일 수 있을 때 이 세상 조금이라도 더 보아 두려고.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마워.”

우리는 애써 눈물을 감추며 서로를 오래 쳐다보았다.

“치료 잘 받으세요.”

나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 어렴풋이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짧은 만남으로도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내가 그녀를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같이했던 시간을 다시 나누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만나는 이마다 “야호!” 하고 인사했기에 ‘야호 아주머니’로 불렸던 그녀는 내 인생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산 구석구석에 배어있던 그녀의 음성이 아련하기만 하다. 그녀는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야호’가 떠난 자리를 채운 새로운 ‘야호’들이 웃으며 서로를 반긴다. 그렇거나 말거나 산은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우리를 대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산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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