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물론 여각에서 직접 운용하는 경강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강선들은 한양의 삼개나루에 당도해 짐을 풀어놓자마자 상인들에게 직접 넘겨졌고 곧바로 짐을 선적한 배들은 나루터에서 지체하는 일없이 각기 팔도의 각 지역으로 떠났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어 달씩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하는 청풍 나루터에서의 경강상인들 모습은 삼개나루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상들과 행상을 하는 보부상들 사이에 흥정을 하느라 벌어지는 악다구니도 없었다. 최풍원은 팔도에서 당도한 물건들이 어떻게 처분되는 지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냈다. 그것은 일단 풍부한 물량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그 물량을 중개해주는 여각이 있었다. 여각에서는 경강선에 실려 오는 팔도의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물산들을 경상들로부터 직접 도거리해 집산해두었다가 도성안의 시전상인에게 넘기거나 경상이나 시전상인 사이에서 중계를 하기도 하였다. 여각에는 팔도에서 온 장사꾼들로 연일 북적거렸다. 장사꾼들은 여각에서 물건도 팔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각에서는 숙식을 하며 사방팔방에서 모인 장사꾼들끼리 장사 정보도 서로서로 교환했다.

최풍원은 북진에도 여각을 차린다면 청풍도가와의 경쟁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북진에 여각을 차려 객주들과 행상인들을 규합하고, 각자가 거래하는 물산들을 여각으로 한데 모은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그렇게 막연한 생각만으로 우리 모두의 동참을 요구하고 끌어들이기에는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장순갑은 어떻게든 최풍원이 하는 일에 흠집을 내려는 심산이었다.

“여러 객주들께서 도와주기만 한다면 절대 막연하지 않소! 일단 객주들께서 여각을 믿고 물산들을 모아주면 물량이 확보될 것 아닙니까? 나는 그 물량을 가지고 경강선과 경상들을 끌어들일 작정이오. 지금까지 우리 청풍에서 이뤄지는 장사는 어떠했습니까? 물산들이 산지사방 흩어져 있으니 경상들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물산을 찾아 여기저기 나루터를 전전하고, 우리도 장사를 해서 거둬들인 물산을 처분하기 위해 무거운 등짐을 지고 경상들이 머물고 있는 나루터를 찾아가 넘겨야 했소이다. 그런 불편하고 힘든 장사를 여각에서 대신 해주겠다는 거요!”

“생각은 좋지만 경강선과 경상들이 살미나 청풍 같은 좋은 장사터를 두고 북진나루로 오겠는가 하는 문제요. 어떻게 그들을 끌어들이겠다는 말이오?”

송만중이 또다시 최풍원의 말에 가시 돋친 말을 했다.

상전 객주들이야 최풍원과 이미 여러해 전부터 함께 해왔으니 별 문제가 없었지만, 새로 받아들이는 임방 객주들은 북진여각의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임방 객주들은 다른 객주들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뜻이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들의 의구심을 상세하게 설명해 이해를 진작시켜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지금까지 경상들은 한양을 떠나 남한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면 각 포구에 진을 치고 하세월을 보내는 게 일상적이었소. 그런데 우리가 여각에 물산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경상들이 왔을 때 맞바로 거래를 할 수 있지 않겠소이까. 그러면 경상들은 여러 날 객지를 떠돌지 않아도 되고 우리 여각에서 물산을 싣고 곧바로 한양으로 내려가면 되니 경비도 덜 나고 그만큼 이득이 될 것 아니겠소이까. 그러면 살미나 청풍으로 가던 경상들의 뱃머리를 북진으로 돌릴 수 있지 않겠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지만 문제는 여러 객주들께서 물산을 모아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약조해주는 사람만 우리 북진여각의 객주로 인정할 생각입니다.”

최풍원이 임방 객주들의 의무 조항을 분명하게 밝혔다.

“여각에서 우리에게 그런 의무를 요구한다면 그 대신 우리에게 여각에서는 어떤 혜택을 주겠소이까?”

이번에는 송만중이 객주들이 자신들의 물산을 몽땅 여각으로 넘길 경우 여각에서는 어떤 혜택을 객주들에게 줄 것인 지를 물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각에서는 여러 객주님들 상전과 임방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대줄 것이외다!”

“그건 다른 곳에서도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오고 있는 것 아니오?”

“그렇지 않소! 우리 북진여각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장사를 해왔소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작정이오.”

“북진여각은 뭐가 다르다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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