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시집간 딸과 사위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명목은 둘째인 손녀 돌 기념으로 여행지는 일본 오키나와였다.

평소 여행을 즐기지 않는데다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을 우선해야 한다고 언론에 기고하며 주장하던 필자로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왜 돌잔치를 해외까지 나가 하느냐고 아내에게 타박하니까 아내는 자식들 힘들게 하지 말고 조용히 따라가자고 하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친구들 모임이나 직장에서 몇 번의 해외여행 기회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구실을 달아 삼가 왔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딸과의 가족여행도 동반하지 않고 가정과 직장을 고수한 나 홀로 애국자였다.

필자는 우체국 재직시절 86년도에 아시아 우정학교인 태국소재 아태우정연수소에 6개월간 연수한 경력이 있다. 그곳에 가기위해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고 당시 영어 인증기관인 라트 시험에 다섯 번 만에 어렵게 합격을 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외국에 가려면 엄격한 통제가 있었고 당국의 특별교육을 받아야만 했었다. 그때 느낀 것은 국력이었다. 방콕 시내를 누비는 자동차가 대부분 일제였고 시가지 간판도 일본말이 즐비하고 식당 등의 종업원들도 일본인을 환대했다. 6개월 있는 동안 우리나라 제품은 조그만 손톱깎이와 수저밖에 구경하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지인들에게 바가지 쓰는 모습을 보며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 왜 멀리 외국에 나와서 낭비 하냐는 생각을 했다.

사돈과는 연령도 비슷하고 기호가 맞아 처음 상견례 때부터 격식 없이 가까이 했고 평소에도 전화도 자주하며 다정하게 지내고 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하게 된 것도 손녀 돌잔치나 다른 무엇보다 사돈과 함께해서 따랐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둘이는 떠나기 한참 전부터 문자를 주고받으며 둘만의 여행계획을 세우기도하고 들떠 있었다.

결혼 전 딸이 신랑감이 키가 190㎝이라고 하여 처음에 너무 크다고 마뜩치 않았었는데 키 큰 진가를 공항과 여행지에서 톡톡히 보았다. 중간 중간 헤어졌다 찾을 때 높은 곳만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았고 키를 화제로 웃으며 가족애를 돈독히 했다. 여행중 누구보다 신나고 가족에게 웃음과 행복을 안겨준 또 하나는 주인공인 손녀보다 첫째인 귀염둥이 손자였다. 양쪽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을 떠니 천사가 따로 없었다. 사돈지간은 서로 어렵게 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가까이 하면 누구보다 편하고 밀접한 사이다.

30여년 만에 해외여행을 하며 느낀 것은 우리나라 국력이 크게 신장된 것이다. 여행지 곳곳에 우리나라 말과 글이 통용되고 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내명소 여행이 먼저라는 지론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관광명소를 잘 보호 관리하여 후손에게 아름답게 물려주어야 나라가 번영하고 융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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