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복두산성은 들머리를 확실히 알 수 없어 마음에 담고 다녔다. 그런데 집안 일로 남이면 비룡리에 가서 일가 어른 이성연님을 뵈었는데 마을 앞산이 꼭 복두를 쓴 것 같이 생겨서 혹시 복두산이 아닐까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일러준 대로 실크리버 골프장 가는 길로 들어섰다. 절개지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보았다. 여기서 서쪽 능선을 타면 복두산성, 성재산성이고, 동쪽 능선을 타면 유모산성, 독안산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성재산성, 복두산성, 유모산성, 독안산성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골프장 가는 길을 내느라 잘려 훼손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네 개의 산성이 이어져 어느 하나가 모성(母城)이고 나머지가 자성(子城)으로 하나의 산성의 효과를 갖기 위한 성이었다면 그 기능의 일부를 상실한 산성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산성까지 조금 가파르기는 했지만 경운기나 중장비가 드나든 흔적이 있어 걷기는 좋았다. 한 20여분 걸어가니 복두산성 안내 표석이 보였다. 이것은 인근 노고산성에 있는 안내문과 비슷하고 부강면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의 부용면장이 문안을 작성하고 역사학자가 감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내용에 복두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된 겹성이며 내성은 130m, 외성은 635m로 되어 있어 총 760m인데 주변에 이어진 능선의 토성까지 합치면 1000m가 된다고 하였다. 정확히 고증된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성과 달리 내성과 외성의 크기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기능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중장비가 들어온 흔적이 있고 산성도 많이 훼손되었다. 산정에 중장비가 들어온 것을 보면 묘지 조성이나 비석이나 상석을 놓는 공사가 있었을 것이다. 성안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아래에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로 성벽의 형태가 보였다. 내려가 보았다. 줄자를 꺼내 원형이 남은 성벽을 재 보았다. 성석은 가로 30~40cm, 세로 약 20cm 정도였다. 장방형의 돌을 깎아서 차곡차곡 올려놓는 바른 쌓기 방식으로 축성했다. 외축내탁 방식으로 돌의 모양은 금이성과 비슷하지만 쌓는 방법은 차이가 있다. 무너진 부분을 살펴보았다. 돌 사이에 쐐기돌을 박아 넣어 무너짐을 방지하였다. 장방형으로 일정하게 쌓은 부분도 있지만, 주변의 자연석을 대충 쌓아 올린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축성 시기가 다르거나 뒷날 보수한 흔적이 아닐까 한다.

성벽이 25단 정도 남은 것으로 보아 높이는 무너진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5~7m 정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북쪽 사면이 비교적 경사가 급한데 그 위에 성벽이 높아 아마도 북쪽에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데 편리했을 것으로 보였다. 부근에 고구려 산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고구려군을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 짐작되었다. 대부분의 성벽이 흙에 묻혀있어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상당히 견고하게 쌓은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다시 성벽 위에 나 있는 수렛길로 올라왔다. 성벽 바로 위에 내성의 석축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수렛길 때문에 거의 훼손되었다. 내성의 성벽은 아랫부분을 돌로 쌓고 그 위에 흙을 다져 올렸다. 토석혼축형 축성법을 연구하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수렛길에 중장비가 다니면서 훼손한 것이 더 안타깝다. 토축한 아랫부분에 마치 기초공사 하듯 쌓은 부분은 외성의 축성법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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