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주들에 의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 사태는 우리나라 재계에 경종을 울리는 초유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특히 사회 물의를 일으킨 오너에 대해 엄중히 경고함으로써 윤리경영이 시대적 대세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7일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됐다. 대한항공의 이사 선임 및 해임은 특별결의사항으로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66.6%) 이상이 찬성을 얻어야 하는 데 이에 못 미친 것이다. 조 회장은 이날 64.1%의 주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이로써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수장이 된지 20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조 회장의 퇴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국민연금이다. 대한항공 지분율 11.56%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전날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를 앞세워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조 회장이 기업 가치 훼손 및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사에 외국인, 기관, 소액주주들도 합세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벌인 조 회장 연임 반대를 위한 의결권 위임 운동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실 조 회장의 이번 불명예는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대학 부정 편입학’, ‘폭행 및 폭언’ 등 잇따라 터져 나온 조 회장 가족의 일탈도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재계는 이번 쇼크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의 한진그룹 지배력은 여전히 굳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에서 빠진 것일 뿐 오너 일가가 대주주여서 직·간접적으로 여전히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항공 사례는 기업 총수 일가의 각종 ‘전횡’과 ‘도덕성 결여’가 곧 경영권 퇴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대기업들은 앞으로 국민연금의 결정에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기업 오너라고 해서 자자손손 경영권을 물려받는 주총의 구시대적인 의사결정 구조도 변해야 한다. 경영계는 이번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면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의 요구는 기업 경영자들의 투명성과 도덕성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국민 의식 수준에 맞는 대기업 총수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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