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일단 북진도중이 결성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첩첩산중이었다. 우선 제일로 시급한 문제가 북진에 상전을 짓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각기 자기 집에서 임방을 차리고 장사를 하던 객주들을 북진으로 끌어들여 장사를 하려면 당장 물건을 깔아놓을 상전이 필요했다. 상전도 한두 채가 아니라 모든 임방주들이 함께 모여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 상전거리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시급한 것이 없앤 임방 대신 영역을 넓혀 요소요소에 새로이 임방을 만드는 일이었다. 장사라는 것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어느 틈엔가 표가 나는 법이었다. 장사라는 것이 날 때는 부지깽이라도 꽂아놔야만 남들이 쉬 넘보지 않는 법이었다. 그런데 청풍 장으로 통하는 요소요소에 자리하던 임방들을 한꺼번에 없애면 분명 그 빈자리를 노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노리는 상대는 청풍도가일 것이었다. 그것을 막으려면 한시라도 바삐 청풍도가의 목을 죌 수 있는 그런 곳에 임방과 임방주들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비호야, 너는 이 길로 영월 성두봉 임방주에게 가서 모일까지 북진으로 내려오십사 전갈을 넣거라! 그리고 왕발이는 조산촌으로 가 차익수 임방주에게 북진으로 오라 전하거라! 또 용강이는 덕산으로 가 수염쟁이 약초꾼 어르신을 여기로 모시고 오너라!”

최풍원이 동몽회원들을 풀어 오늘 회합에 참석하지 못한 먼 지역 임방주들을 북진본방으로 모시고 올 것을 명령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일로 부르려 하는가?”

금방 회합이 끝났는데 또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최풍원의 의중이 궁금해진 장순갑이 물었다.

“형님은 몰라도 됩니다!”

최풍원이 매정하다싶을 정도로 장순갑의 물음을 잘라버렸다.

“이보게 동생, 너무 한 것 아닌가?”

장순갑은 서운한 표정보다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모일 날 광의리, 양평, 연론 객주님은 본방으로 필히 와주십시오!”

최풍원이 장순갑을 대놓고 무시했다. 그리고는 김길성과 김상만과 박한달을 며칠 뒤 북진본방으로 와달라고 언지를 주었다.

“무슨 일인데 코앞에 있는 내게는 가타부타 얘기가 없는가?”

“…….”

장순갑이 따지듯 물었지만 최풍원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서너 날 전 장팔규가 최풍원을 은밀하게 찾아왔다. 그리고는 그동안 살폈던 장순갑의 동태를 알려주었다.

“대주, 장순갑이가 청풍도가를 드나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요. 그 안에 들어가 무슨 일을 벌이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장순갑이가 청풍도가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까지 제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했습니다요. 그것도 사흘도리로 도가를 드나듭니다요. 분명히 내통을 하며 무슨 일인가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요. 그러니 대주께서는 앞으로 장순갑을 대할 때 각별히 조심하셔야 할꺼구먼유.”

소문은 사실이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사람들로부터 장순갑이 수상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최풍원은 긴가민가하였다. 설마 그동안 쌓아온 정리가 얼마인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장순갑 형님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욕심이 넘쳐 재 돈 생기는 일이라면 남 생각 않는 것이 문제이기는 해도 자기를 배신하고 뒷통수 치는 일은 하지 못할 사람이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장순갑의 뒤를 밟으며 살피고 있던 장팔규의 보고를 받고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가 헛소리가 아닌 것이 분명해졌다.

“대주, 장순갑을 불러 여러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 족치지유?”

장팔규가 고민하는 최풍원의 표정을 살피며 장순갑이 청풍도가에 드나드는 연유를 캐물어보자고 했다.

“도가에 드나드는 것만 가지고 그걸 뭐라 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그러니 확실한 증자를 잡을 때까지 너는 아무에게도 입도 뻥끗 하지 말거라!”

최풍원이 장팔규에게 입단속을 하라고 시켰었다. 그것이 며칠 전이었다.

“순갑이 자네야 도중회가 무슨 소용인가. 지가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지! 뭐라도 빨아먹을게 있으면 눈깔이 벌게서 달라붙겠지!”

객주들이 돌아가며 대놓고 장순갑을 비난했다.

“언제까지 네놈들이 날 그리 대할 것인지 두고 보자! 머잖아 날 능멸하는 네 놈들 능글능글한 눈깔에서 피눈물이 쏟아지는 걸 보게 될 거다!”

장순갑이 객주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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